[명인의 삶] 7대째 가업 이어온 얼레빗 장인, 한민족의 두발문화를 말하다 (2)
[명인의 삶] 7대째 가업 이어온 얼레빗 장인, 한민족의 두발문화를 말하다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형문화재 제42호 목소장 치산(治山) 이상근 명인

▲ 얼레빗의 종류

◆얼레빗 출품만 19년, 드디어 인정받다

이 명인이 처음부터 얼레빗을 만든 것은 아니다. 명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집에서 공방을 한 데다, 고등학교도 금속과 출신이다 보니 나무 만지는 것도 기계 다루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처음에는 나무 만지는 것이 익숙하니까 소목일을 주로 했어. 가구 같은 것을 잘 짰단 말이지. 또 80년대 초에는 원목으로 가구 짜는 게 유행하기도 했고.”

나무로 조각하는 것을 워낙에 좋아했다는 명인은 어느 순간이 되자 ‘얼레빗’이 만들고 싶었단다. 어릴 때부터 얼레빗 만드는 것을 자주 봐왔던 것도 한몫했지만 차별화된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하루는 공예대회에 작품을 출품하러 갔는데 내가 만드는 것이나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나 다 비슷비슷한 거여. 나무로 만드는 것은 뭐든 출품해도 된다고 해서 그 이듬해부터는 ‘빗’을 만들었지.”

문제는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 얼레빗을 출품하니 ‘빗이 무슨 공예품이냐’며 심사를 안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간신이 입선을 하고 나서 그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계속 출품을 하다 보니 얼레빗 출품만 19년이 지났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바로 전에 개인적으로 ‘빗’ 전시회를 한다고 대전 어느 거리에 현수막을 걸었어. ‘얼레빗전(展)’이라고. 그런데 누가 그 현수막을 보더니 ‘야, 누가 머리빗 가지고 전시회를 한다는데 너희는 빗자루 가지고 전시회나 해라’ 그러는 거야. 그런 소리를 들어가면서 얼레빗을 만든 거여.”

지금이야 ‘다 지난 일’이라며 웃으면서 말하지만 당시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하고도 남음이다. 때로는 비웃음을 받아가며 20년 가까이 얼레빗을 만들던 그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기능전승자를 선정하는 심사위원들이 이상근 명인의 소문을 들은 것이다.

“전통기법으로 얼레빗을 만드는 것을 보고 놀란 거여. 얼레빗장이를 못 봤으니까. 한 번은 YTN 기자가 와서 작업하는 것을 찍어서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보냈어. 심사위원들이 필름을 돌려가며 얼레빗 만드는 공구를 다 본 거지. ‘이 사람이 진짜 전통으로 얼레빗을 만드는 것 같다’며 나를 찾아오게 된 거여.”

이 명인을 찾아온 심사위원은 기능전승자 제도가 있는데 왜 신청하지 않았냐고 물었다고 한다. 당시 기능전승자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이미 송광사 경내 ‘금죽헌미술관’의 김기찬 관장이 얼레빗 분야의 기능전승자로 지정돼 있어 신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안 되는가보다’라며 포기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어. 법을 개정해서 두 사람도 기능전승자로 지정할수 있도록 했다는 거여. 그렇게 해서 2003년도에 기능전승자로 지정될 수 있었지.”

▶ (3)편에 계속됩니다.

[백은영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