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고향을 그리는 한국화가 김학곤

▲ 휴식

‘색약’을 뛰어넘다

김학곤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환경미화는 단연 그의 몫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와 친분이 있으신 선생님 한 분이 “너는 화가가 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림에 익숙해졌고, 자라면서 그림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져갔다.

“‘그림을 그려야겠다.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열정적으로 지내왔는데 어느 날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됐죠. 제가 색약이라는 거예요. 중학교 때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만큼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죠. 그 시절 색약은 미대에 들어가지도 못했거든요.”

그림이 전부였던 그에게 색약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정비공장도 다녀보고 농사도 지어봤다. 그렇게 방황 아닌 방황을 하던 중 우연히 그림을 다시 접하게 됐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업을 이어갔다.

그의 인생에서 그림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열정과 노력, 인내는 색약인 그를 대학으로 이끌었다.

“고민이 많고 힘든 시기에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어떻게 하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림의 콘셉트는 어떻게 잡아야 할까. 나 혼자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림은 없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3년 정도를 전국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게 된 거죠.”

그런 그의 열정은 그를 풍경화의 세계로 이끌었고, 그의 그림을 본 한국 화단의 거목 벽천 나상목 화백의 눈에 들게 됐다.

“26~27살 늦은 나이에 원광대학교에 들어가게 됐어요. 당시 원광대 미술대학 학장을 역임하셨고 미술교육과 교수로 계셨던 벽천 나상목 선생님께서 교수회의를 열고 학칙을 바꾸면서까지 제가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셨죠.”

혹자는 그의 미대 진학이 운이 좋아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미대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도,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결코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의 산물이자, 선물이었던 것이다.

적록색약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자연의 사계(四季)를 화폭에 담는 화가 김학곤.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은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최대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색약이라는 불편함마저도 뛰어넘는 기적을 낳았다. 그래서인가. 그의 그림을 보면 자연의 싱그러움과 고향의 아련함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다.

다름 아닌 삶의 소중함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벗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 꿈에도 그리운 고향을 마음에 담고 선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 한국화가 김학곤의 그림이 주는 힘이다.

[백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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