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60주년 기념 및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 비전 (12)

▲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지난 1월 9일 평양 인민대학습당을 참관하고 있다. 이에 앞서 대표단은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도 참관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일녀 기자]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됐다. 통일과 동시에 동서독의 체신부는 하나로 통합됐고, 동독지역의 통신체계 현대화와 동·서독 간 통신망 확충이 체신부의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계획이 ‘Telekom 2000’이라는 종합정보망 구축사업이다.

이 계획은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총 3단계에 걸쳐 비상계획으로 진행됐다. 동독의 경제재건을 위해서는 새로 설립된 생산업체나 서비스업체에 통신시설을 보급하는 게 그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계획은 독일 체신사상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입안됐고 수행에 들어갔다.

북한의 정보통신분야도 동독 못지않게 낙후됐다. 그 수요가 군수산업 등 특정목적에 한정돼 있고 통신이 국가경제를 위한 주요한 인프라로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계획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러한 체제에서는 민간 부문에 의한 상거래시장이 조성되지 않으므로 통신 수요가 발생하기 어렵고, 또 새로운 통신기술 및 서비스의 도입이 우선 시 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IT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특히 ‘강성대국 건설’의 방법으로 IT를 강조하고 있다. 단적으로 지난해 5월 23일자, 29일자 노동신문 기사를 보면 ‘과학 교육 출판 보도 통신 등 각 분야에서 IT를 널리 받아들여 강성대국 건설을 실현해 나갈 것’을 당부하는 글과 “현재 정보기술·정보산업의 발전 없이는 강성부흥을 생각할 수 없다”는 내용이 실렸다.

실제 북한은 IT를 통해 경제를 단번에 회생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이를 ‘단번도약’의 전략이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이 많이 드는 하드웨어보다 고급 두뇌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으면 추진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쪽을 선택해 내부 역량을 집중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 체재의 급격한 개혁 없이 체재에 영향을 주지 않고도 경제를 재건할 수 있는 길은 IT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북한컴퓨터센터·평양프로그램센터 등이 주도적으로 프로그램개발에 대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고, 김일성종합대학·김책공업종합대학 등을 중심으로 많은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렇듯 소프트웨어 부문에 높은 관심을 갖고, 또 잠재성을 보인다 하더라도 하드웨어와 통신기기 및 통신망 분야가 취약하면 향후 정보통신 통합에 난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한 외국기업의 투자 여건, 세계시장 판로 확보 등의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채 전문 인력만 많이 배출한다면 이후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 북한의 IT 개방 수준은 아직까지 매우 제한적이다. 지난 1월 북한을 방문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북한이 시민들에게 인터넷을 개방하지 않고 세계 속에서 고립을 택한다면 경제발전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시 AP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슈미트 회장은 3박 4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친 후 베이징에 도착해 “세계가 인터넷을 통해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는 시대에 북한이 스스로 가상의 ‘고립’을 택한다면 물리적 세상에서 경제성장과 발전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 정부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무엇이든 해야 하며, 내 생각엔 지금이 이 결정을 통해 그들(북한)이 후퇴 혹은 전진하게 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아랍의 봄’과 같은 중동의 민주화 혁명이 북한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을 예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선 아랍과 북한은 미디어 수준, 경제 체제 등 처해 있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

특히 아랍의 봄이 촉발된 데는 아랍 국가들 사이에 미디어·모바일·SNS 등이 결합돼 있었던 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만큼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랍과 달리 북한에는 민주화를 요구할만한 중산층이 존재하지 않으며 개개인의 의견을 낼 수도 없는 환경이다.

이러한 가운데 남북한 협력을 위한 교두보로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지난 1월 열린 ‘통일 IT포럼 신년교류 세미나’에 참석한 김진경 평양과학기술대·연변과학기술대 총장은 “정치로 통일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최성 남서울대 교수도 ‘통일 IT 정책제안’ 발표를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한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IT 분야 기술제휴와 소프트웨어 교류협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며 “평양에선 느리지만 서서히 디지털 세계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남북 IT 교류 중장기 추진 방안으로 ‘남북한 IT 산업 표준 협력 센터 설립’을 통한 북한 IT 산업의 국제 표준화 지원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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