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6·25전쟁 해외참전용사 사진 찍는 이병용 작가 (2)
[인터뷰] 6·25전쟁 해외참전용사 사진 찍는 이병용 작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아픔만 아시는 당신께

▲ 에티오피아의 참전용사들(위), 에티오피아의 미망인들(가운데), 터키의 참전용사들(아래) (사진제공: 이병용 작가)

에티오피아로, 터키로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말의 무게감

2007년 이 작가는 10년 동안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찍겠노라고 결심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만이 아니라 외부에도 가치 있고, 은혜를 갚아야 하는 대상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21개국 중 먼저 에티오피아와 터키를 방문하게 됐다.

에티오피아는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한국의 자유와 평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나라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이탈리아의 무력 침공을 받아 국제사회에 구원 요청을 했을 때 외면을 당했던 아픔을 겪었던지라 자국의 형편이 좋지 않았음에도 유엔의 지원 요청에 즉각적으로 병력을 지원했다.

특히 셀라시에 황제는 황실근위대를 한국에 파병시켜줬다. 전쟁 결과는 6천여 명이 참전하여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을 당하는 희생을 치렀다. 그러나 1974년에 공산정권이 군부 쿠데타로 들어서자 한국전에 참전했던 용사들은 졸지에 반역자가 되어 처형되거나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고마우면서도 안타까운 역사를 가진 에티오피아, 이 나라 곳곳에 숨어있는 참전용사들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었을까. 이 작가는 착하고 똑똑한 꼬마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작은 약속도 허투루 하지 않는 이 작가였기에 아이들도 기꺼이 참전용사 집을 찾는 일을 도왔다. 집을 찾으면 방문하여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는다. 이 작가는 그렇게 아이들과 빵도 먹고, 놀기도 하고, 때론 집 청소도 해주면서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한 장 한 장씩 찍어나갔다.

▲ 2주간의 결혼생활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터키 참전용사 미망인 아이센 듀즈균 여사. 젊은 시절의 남편과 자신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들고 있다. (사진제공: 이병용 작가)
이 작가가 터키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그는 여든한 살의 한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 할머니는 스물한 살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 지 2주 만에 남편이 군입대를 하게 되었고, 군대에 간 남편은 그 이후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전에 참전하여 전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60여 년이 지나도록 혼자 살고 있었다.

이 작가가 처음 할머니를 만났을 때 그 할머니는 바위처럼 표정이 굳어있었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도 걸고, 젊은 시절의 할머니와 젊은 남편의 사진을 합성하여 큰 액자에 담아 만들어주기도 했다.

터키를 네 번째 방문했을 때는 특별한 선물도 준비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 있는 할머니의 남편 무스타파 듀즈균의 묘비 근처 흙 한줌을 보자기에 담아가서 갔던 것이다.

할머니는 ‘남편이 잠들어있는 곳에서 퍼온 흙’을 처음엔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딴청만 피웠다. 그러나 이내 코끝이 빨개오면서, 주름 가득한 두 손으로 흙을 만져보았다.

2주 만에 끝난 결혼생활이었지만 할머니는 그 어떤 원망도 없었다. 마을의 작은 모스크에서 마음의 위안을 찾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혼인집터였던 곳의 흙 한줌을 보자기에 담아 남편의 묘비 근처에 뿌려달라고 이 작가에게 부탁하며 먼 길을 찾아온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 산골짜기에서 조용히 사시는 분이 왜 이런 고통을 받았어야 했을까요. 우리는 한국전쟁에서 우리가 피해자라는 생각만 하지, 가해자 또는 죄인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어요. 전 국토가 폐허가 됐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만 하고 살아왔어요. 하지만 UN참전군이나 미망인을 만나면 마음이 참 답답하고 죄 짓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전해주며 그분들의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응어리들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그 양반들은 외려 제가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요. 그 양반들이 저에게 돌려주는 고맙다는 말의 무게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 (3)편에 계속됩니다.

[박미혜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