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6·25전쟁 해외참전용사 사진 찍는 이병용 작가 (1)
[인터뷰] 6·25전쟁 해외참전용사 사진 찍는 이병용 작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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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픔만 아시는 당신께

▲ (사진제공: 이병용 작가)

최근에 북한이 자꾸 도발 위협을 한다. 그래도 사실 민간인에겐 거의 남의 일이다. 간담이 서늘해지며‘진짜 전쟁 일어나는 거 아니야?’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도 있지만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 하물며 63년 전 일어났던 6·25전쟁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그 전쟁의 결과로 이 한반도의 허리가 뚝 잘렸는데도 말이다. 알고 보면 그렇게 먼 날의 전쟁도 아닌데…. 아직 그 시대를 생생하게 증언해 줄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살아 계신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그날의 처절함과 고통, 또 그 역사가 주는 교훈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특별한 사진작가를 만났다. 인터뷰를 하러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를 풍기면서도 몸빼바지 같기도 하고 한복바지 같기도 한 특이한 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

“한복을 즐겨 입으세요?”라고 물었더니 “돌아가신 어머니 바지예요. 엄마 바지를 입고 있으면 조금이나 엄마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요”라는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작가는 ‘개인, 가족 그리고 생이별의 슬픔’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관심이 많다. 마치 모친의 숨결을 잊지 못해 그녀의 바지를 입고 있었던 것처럼.

그런 그의 마음에 걸림이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낯선 나라의 내전에 참전해 목숨을 잃거나 젊음을 바쳤던 사람들에 대한 마음의 빚. 그는 바로 6·25전쟁에서 싸웠던 해외참전용사나 돌아가신 참전용사의 미망인, 가족 친지들의 사진을 찍는 이병용 사진작가이다.


앵글이 머무는 공간
재개발현장에서 6·25참전용사들에게로

▲ 이병용 사진작가

이병용 작가는 서른한 살 때부터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셈이다. 원래 여행을 좋아해서 카메라는 늘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지만 서른이 갓 넘자 직장을 그만두고 아예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막무가내로 일본어 중급반에 들어가 3개월 동안 속성으로 공부를 하고 떠났다. 하지만 왕 초보 일본어 실력이 크게 문제되진 않았다. 오히려 ‘사진’과 ‘일본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재미에 푹 빠졌다.

24시간 일본 TV를 틀어놓고, 자다가도 새로운 단어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다시 듣기를 반복했다. 과제도 충실히 했다. 교수님이 사진 5장 찍어오라고 하면 10장, 20장을 제출했다.

교수님과 독대하면서 배우기도 했다. 그때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때론 헐크처럼 일상에서의 이병용과 사진장이로서 이병용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그렇게 사진작가로서의 자질과 실력을 갖춰 나갔다.

일본공예예술대학에서 연구생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일을 해야 하는데. 하지만 이 작가는 사진으로 돈을 벌어본 기억이 별로 없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작가를 “돈 안 되는 것만 골라서 찍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왜 돈 안 되는 것만 찍으십니까?”라고 물으니 본인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그런 데에 관심이 많이 가요. 한국에 와서 줄곧 찍었던 것이 재개발 현장인데요, 고향 춘천을 비롯해서 청계천, 서울 봉천동, 신림동, 신길동 등.” 그의 시선은 억압받고 사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공간들을 외면하지 못했다. 돈은 밥을 먹고 필름을 살수 있는 정도면 되는 것이라 ‘돈 되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청계천 사진 작업이 끝날 즈음, 2006년 9월 11일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을 기념하는 행사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과 그의 손자들이 방한을 했다. 그런데 이틀 후 그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에 망명 신청을 했다는 기사가 뜬 것이다. 이 작가는 어렴풋이 남아 있는 10살 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1968년 춘천에 있는 에티오피아 기념관에서 봤던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모습은 너무나 멋있었는데…. 왜 지금은 그들의 후손이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망명을 요청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인가 되돌려줘야 하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카메라 앵글이 재개발 현장에서 6·25전쟁 참전용사들에게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최근에 북한이 자꾸 도발 위협을 한다. 그래도 사실 민간인에겐 거의 남의 일이다. 간담이 서늘해지며‘진짜 전쟁 일어나는 거 아니야?’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도 있지만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

하물며 63년 전 일어났던 6·25전쟁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그 전쟁의 결과로 이 한반도의 허리가 뚝 잘렸는데도 말이다. 알고 보면 그렇게 먼 날의 전쟁도 아닌데…. 아직 그 시대를 생생하게 증언해 줄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살아 계신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그날의 처절함과 고통, 또 그 역사가 주는 교훈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 (2)편에 계속됩니다.

[박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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