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미학을 느끼다

▲ 영암사지 (사진=최성애 기자)

모산재 무지개터에 이어 영암사지 역시 휑하다. 물론 겉으로 볼 때만 그럴 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본다면 많은 것이 마음에 담긴다. 부처의 나라로 인도한다는 가릉빈가, 화사석(火舍石)을 천 년간 들어 올리고 있는 사자 두 마리, 삽살개를 닮은 사자, 우두커니 서 있는 삼층석탑, 만들어진 시기는 다르지만 대웅전 격인 금당을 오래 지킨 거북이 두 마리. 찬찬히 그네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 바로 영암사지다.

아침 햇살을 받은 폐사지는 새롭다. 터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인데도, 비었기 때문에 가득 찬 느낌이 든다. 모산재를 배경으로 세워진 절이라는 것만 해도 비범하지 않은 절이라는 게 단번 느껴진다.

영암사가 처음 지어진 때는 바야흐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된 영암사의 기록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홍각선사비문에서 찾을 수 있다. 827~840년 홍각선사가 영암사에서 여러 달 동안 선정을 닦았다는 내용이다.

기록뿐만 아니라 유물과 유구, 석축기법 상한선이 8세기 중반을 넘지 않는다. 특히 바른층쌓기에 쐐기형 돌을 못처럼 박아넣어 석축을 단단히 고정하는 기법은 경주 감은사지(681), 불국사(751~774), 월정교·일정교(760)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이뤄진 기법이다.

축구장 절반 정도인 규모만으로도 옛 영암사가 일반 사찰이 아니었음을 가늠케 한다. 불국사 못지않은 권위가 있었으리라 본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복도, 회랑 터는 당대 화려했던 절집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빈터가 그토록 유명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 사자 두 마리 덕분일 것이다. 멀리서 보면 삼층석탑에 가려 그 면모를 볼 수 없지만 가까이 보면 매력적인 사자를 만날 수 있다. 사자 두 마리가 등불을 밝히는 돌집(火舍石)을 가지고 있다 하여 이 석탑은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이다. 무려 1000년이나 같은 자세로 화사석을 올리고 있는 사자를 보노라면 대견하단 생각과 함께 당시 석장들의 손기술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석등은 당시 양식에 맞게 팔각형을 이루고 있다.

연꽃이 아래로 핀 여덟의 복련석 위에 갈퀴와 꼬리까지 표현된 사자 두 마리가 마주 서서 힘을 다하고 있다. 게다가 복스러울 정도로 통통한 발과 토실토실한 엉덩이, 화사석을 들어 올리느라 단단히 힘을 준 허벅지와 종아리…. 이 모두가 천년 전 석장의 손에서 태어났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불교에서 사자는 부처의 법을 전하는 메신저이자 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벽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쌍사자처럼 곳곳에 있는 사자들이 무섭기는커녕 해학적이다. 불법(佛法)을 엄격하기보다 친근하게 전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 (4)편에 계속됩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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