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빤 강남스타일~”
지난해 7월 싸이(본명 박재상)의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가 첫선을 보이자마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미주를 비롯해 유럽과 중동, 동남아 등 국적과 인종을 넘어서 모두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열광했다. 생각지도 않은 인기로 싸이는 ‘강제 해외진출’ 활동을 해야만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이 여파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2013년 2월, 싸이는 ‘강남스타일’을 발표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노래로 말레이시아에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말춤, 반복되는 멜로디와 리듬, 재치 있는 무대매너 등으로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즐거움’이 ‘강남스타일’의 인기 비결이다. 이는 선조들의 ‘낙(樂)’과 ‘풍류(風流)’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강남스타일’을 통해 음악을 즐기고 어깨를 들썩일 줄 아는 우리네 음악코드와 정신을 한번 되짚어 보자.

 

언제부터일까. 1990년대 말 남성 듀오 클론이 ‘쿵따리 샤바라’로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은 이후 H.O.T., 젝스키스, 신화 등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 대중음악계에 한류바람이 불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제이팝(J-POP, 일본 대중음악) 시장이 미국 다음으로 컸기 때문에 갑작스레 수직 상승한 한국 대중음악-당시 ‘케이팝’이란 단어는 생소했다-의 인기는 얼떨떨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해외진출은 곧 불어닥칠 음반시장의 불황을 극복하는 방책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대형기획사들 중심으로 해외진출을 염두에 둔 가수들이 양성됐다. 이를 두고 아이돌과 댄스 음악 위주로 편중·획일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오고 있는 가운데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한 세계인들의 반응은 우리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혜택이기도 하거니와 기본적으로 ‘흥(興)’을 돋우는 노래와 춤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 역시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아니 같이 말춤을 추게 했다. 마치 농악대의 장단에 맞춰 마을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췄던 것처럼 말이다.

▲ 지난해 7월 싸이(본명 박재상)의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싸이, 현실을 풍자하는 광대

‘케이팝의 역사는 ‘강남스타일’의 전과 후로 나뉜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이들이 SNS를 통해 능동적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말춤을 따라 춘다든지 강남스타일을 따라 부르는 영상이 올라오거나 강남스타일에 대한 평을 짧게 실시간으로 남기는 등이 그런 예다. 그러고 보면 SNS는 우리의 ‘장터’ ‘마을’ ‘공동체’ 문화와 유사하다.

옆집 순이네 아랫마을 돌이네 등 마을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듯 한국문화는 개방적이다. 그래서 ‘품앗이’가 있고 가을걷이 후 농악을 울리며 마을을 돌며 모두 함께 즐긴다. SNS 역시 마당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흥이 돋는 가무(歌舞)가 등장하니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는 것이다.

또 ‘강남스타일’을 부르는 가수 싸이를 보면 광대, 놀이패가 떠오른다. 현실에 무심한 듯하지만 풍자적으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당당히 전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연희패와 같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William Pesek)은 “싸이는 강남에 대해 상위 1% 계층이 사는 서울의 부촌이며 미국의 비벌리힐스와 맨해튼, 일본의 시부야를 혼합해놓은 지역”이라며 “싸이가 이번 뮤직비디오를 통해 15년 전 경제 위기를 불러왔던 일부 계층의 ‘물질주의’를 풍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지로 싸이는 강남 8학군에서 중·고교를 다녔고 1990년대 대중문화를 향유한 X세대다. 경제적인 풍요 속에서 사춘기를 보낸 X세대는 팝과 가요를 마음껏 듣고 나이트클럽에서 로스 델 리오의 ‘마카레나’에 맞춰 춤추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싸이는 부유한 강남 출신이지만 고급스러움보단 우스꽝스러운 비주류의 키치문화를 내세우면서도 저급하지 않은 뮤지션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싸이이기 때문에 ‘강남스타일’이 나올 수 있었다.

영국 킹스턴대학 사이먼 매이드먼트(Simon Maidment) 예술·디자인대학장은 헤럴드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강남스타일은 한국의 예술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본질에 충실한 듯 보이면서도 현실을 약간 비꼬면서 풍자를 이끌어낸다”며 “래퍼같이 심각하고 살벌한 얼굴로 말하지도 않는다. 전 세계인이 모두 즐거워하는 방식으로 얘기한다”고 전했다.

이어 “웃음이라는 코드로 풍자를 이끌어낸 점이 수많은 디자인학자들에게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며 “한국 출신 유학생들이나 싸이의 강남스타일 등을 통해 본 한국인들의 기질은 풍자에 있어서는 단연 세계 최고의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팝적인 요소가 강한 ‘강남스타일’이지만 이면엔 우리네 DNA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 정황에서 찾아냈다. 모두가 공감하고 즐기는 이 노래야말로 ‘21세기 민요’가 아닐까. ‘강남스타일’에 대한 전 세계인이 보여준 공감력은 한 국가브랜드 이미지 순위까지 올릴 정도로 크다.

지난 1월 삼성경제연구소가 국가브랜드지수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브랜드 순위(실체)는 13위로 전년보다 2계단 올랐다. 국가브랜드 이미지 순위 역시 2계단 상승해 17위를 기록했다. 연구소 측은 “‘강남스타일’의 싸이뿐 아니라 케이팝 스타들이 ‘현대문화’를 홍보하면서 순위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지속하느냐 마느냐가 중요치 않다. 다만 이 노래가 전통을 현대문화에 어떻게 녹여야 하는지 감각적으로 습득하게 하고 케이팝이 나아갈 방향을 읽어내고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제2의 강남스타일이 기다려진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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