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은 과거로 회귀(回歸)하는 진풍경을 연일 연출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체결 기념일인 지난 4월 28일 ‘주권회복‧국제사회복귀 기념식’에서 ‘천황(일왕)폐하 만세!’ 삼창을 외치는 일본 각료, 특히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행사장 밖으로 나가려 하자 양손을 들고 “천황(일왕) 폐하 만세”를 외치는 아베 총리의 모습에서 군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뿐인가. 군복을 입고 탱크에 오른 아베 총리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전쟁터로 달려 나가자고 젊은이들에게 호소하는 장수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이 행사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조약 체결로 6년 8개월간의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통치에서 벗어난 날을 기념하는 61주년 행사로서,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개정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급진보한 일본의 우경화 분위기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아사히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사설을 통해 일본의 패전 원인이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본의 잘못된 선택 즉, 침략전쟁과 식민지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산케이신문 등 일부 언론들은 아베 정권을 옹호하고 나섰다.

아베 총리가 작금에 보여주는 일련의 행보는 준비되고 계산된 작품이라는 데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다.

지난달 24일 오후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아베 총리는 한국과 중국이 아소다로 부총리 등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에 반발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영령에 존숭(尊崇)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각료는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다. 그 자유는 확보하고 있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정당성을 주장해 온 데 이어,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국가 간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앞서 23일 참의원 답변에선 “무라야마 담화(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으며, 그 전날 밤엔 “일본의 영토와 주권에 대한 도발이 계속되고 있어 영토를 단호히 지키겠다는 결의가 기본이다”는 등의 영토 도발을 독려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아베 총리 및 일본 정부의 계산된 행보의 저의는 뭐겠는가. 일본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우경화 분위기를 고조시켜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나아가 일본의 재무장을 노리는 고도의 술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외신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7일 ‘한 사람의 침략이란…’ 사설에서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할 것이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2차 세계대전을 누가 시작했는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처럼 의심의 여지가 없는 문제인데도 아베 총리는 ‘신선한 해석’을 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편 미국의 유력 일간지들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침략 망언이란 제목의 기사를 연이어 탑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특히 “독일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역사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면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는데 왜 일본의 일부 진영은 사실을 인정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짚어 볼 것은 미국의 언론과는 사뭇 다르게 미국 정치권의 반응이다. 지금껏 일본의 역사 및 영토 문제, 나아가 우경화에 대해 언제나 분명한 입장을 내놓기를 꺼려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오늘의 부도덕하고 야만성이 있는 일본이 있게 한 그 중심에 바로 미국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잠시 한․미․일 간에는 역사적으로 어떠한 함수관계가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905년 미국과 일본의 밀약인 가쓰라-태프트 조약이 조선의 식민지를 낳았고, 오늘날 한 맺힌 남과 북의 분단의 원인과 배경이 된 것도 바로 포츠담 선언(미국-트루먼, 영국-처칠, 소련-스탈린)에서 결정된 것이며, 한반도의 막내이자 첨병인 독도의 수난도 1952년 미국의 전후처리보상문제를 다룬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미국의 불분명한 태도가 낳은 결과로 오늘날 영토분쟁의 씨앗으로 남겨졌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극동지역의 패권을 미국이 유지 점령하기 위해선 일본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일본의 우경화 조짐에 대해서만큼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비공식 라인을 통해서라도 “동아시아 정세의 불안정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아베 총리 및 일본 각료에게 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다소 긍적적으로 평가되고는 있으나, 이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예의차원에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문제, 특히 남북의 극한 대치 상황이 이어지며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이웃 일본은 도움은커녕 제2의 정신적 침략과 식민 지배를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 둬야 할 것이다.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우방도 없음은 물론 한반도 통일을 진정 원하는 나라 또한 없을 것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지나간 역사적 사건을 거울삼아 우리는 외교적 역량을 강화하되 의존적이 아닌 주도적이 돼야 하며, 남북의 문제도 남북 간 자주적인 인적․물적․문화적 교류만이 평화통일의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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