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역사와 전통, 풍류를 이어가는 고장 (2)
[전북] 역사와 전통, 풍류를 이어가는 고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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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슬로시티’ 표지판
느림의 미학, 내 마음의 힐링(healing)을 찾아서

‘느바기’가 그려진 곳을 따라 걸으면 그 길이 바로 국제슬로시티 전주의 또 하나의 자랑 ‘아름다운 순례길’이 된다. 전주를 맛의 고장, 예향의 도시, 전주국제영화제, 소리축제 등으로만 기억한다면 아직 전주를 다 돌아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주는 또한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불교, 민족종교의 풍부한 종교문화유산을 간직한 지역으로 이 ‘아름다운 순례길’은 바로 이러한 종교 성지를 둘러볼 수 있는 코스로 되어 있다.

일행이 택한 코스는 제1코스로 한옥마을에서 송광사까지의 순례길이다. 일부러 순례길을 걸으려 한 것은 아니건만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여정이 자연스레 순례길로 이어진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다시금 발길이 닿은 전주한옥마을에서 시작된 일행의 발걸음은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전동성당을 향했다. 전동성당은 1791년 신유박해 때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이 참수형을 당한 최초의 순교터이며, 호남의 모태 본당이 된 전교(傳敎)의 발상지다. 웅장하고 화려한 로 마네스크양식과 비잔틴 풍이 가미된 전동성당은 1908년에 완공됐다.

▲  전동성당. 1791년 신유박해 때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수형을 당한 최초의 순교터로 1908년 완공됐다. 웅장하고 화려한 로마네스크양식과 비잔틴 풍이 가미된 건물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사진=정인선 기자)

전동성당은 박신양·전도연 주연의 영화 <약속(1998, 감독 김유진)>에서 극중 건달 공상두(박신양)와 여의사 채희주(전도연)가 눈물의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며, 최초의 순교터인만큼 연중 많은 천주교인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전동성당을 지나 교동교당을 거쳐 전주천을 따라 걷다보면 한벽루가 나온다. 이곳에는 승암산 기슭 절벽을 깎아 세운 누각 ‘한벽당(寒碧堂)’이 있다. 이 누각은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최담이 태종 4년(1404)에 별장으로 지은 건물이다.

바로 이 누각 아래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데 바위에 부딪쳐 흰 옥처럼 흩어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다하여 ‘한벽당’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그 옛날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이 쉴 새 없이 찾아와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을 이곳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이 누각이 세워질 당시 주변의 풍경은 사뭇 웅장하고 아름다웠으리라. 비록 비바람에 깎이고, 세월의 흔적에 빛바래 예전 그대로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 옛날 시와 글과 풍류는 아직 남아 이곳 ‘한벽당’을 찾는 이들을 잠시 풍류객으로 만드는 것 같다.

몇 개 외지 못하는 시조 한 수 (속으로) 읊고 내려오는 길이 어찌나 아쉽던지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한 번 찾아 전주천 변을 따라 핀 꽃이며, 한벽당 아래로 흐르는 물을 마음으로 한껏 느껴보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순례길의 믿음직한 가이드 ‘느바기’를 따라 ‘치명자산 성지’로 향하는 길에 작은 터널이 하나 나온다. 과거 철길이었다는 이곳은 한벽루 아래 있어 그런지 ‘철길 터널 한벽굴’로도 부르는 듯하다.

혹자는 굳이 찾아가볼 곳은 아니라지만 순례길을 걸으며 만날 수 있는 곳이기에 또 굳이 안 볼 이유도 없는 곳이다. 외려 터널 왼쪽으로 보이는 ‘한벽당’과 묘한 조화를 이뤄 이국적인 멋도 더한다.

‘치명자산 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아들 유중철(요안),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동정부부 순교자 등 순교자 7위의 무덤이 산 정상에 모셔진 성지다. 원래 이곳은 승암산(僧巖山)이라 불렸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묻힌 이후로는 치명자산 혹은 루갈다산으로 더 많이 불린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 동고사라는 절이 있어 동고산으로 불리기도 하고, 산 정상의 거대한 바위를 중바위라고 불러 ‘중바위산’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천주교 성지와 절이 공존하는 이곳 승암산. 먼발치서 승암산 중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얀색 석상이 하나 보이는데 보는 이에 따라 마리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이 석상은 사실 동고사절에 있는 거대한 불상이다.

이제 순례길 제1코스의 마지막인 송광사만이 남았다. 마음 같아서는 마지막 코스까지 찍고 싶었지만 순례길 또한 국제슬로시티에 걸맞게 ‘느리게, 바르게, 기쁘게’ 걷는 길이기에 일행은 지친 걸음을 잠시 쉬며, 다음을 기약했다.

일행이 기약한 다음이 바로 이틀 후가 될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참고로 송광사는 종교 간 화합의 상징으로 불리는 곳으로 국내 유일의 열십(十)자형 종루로 유명한 천년 고찰이다.

▲ 아름다운 순례길 제1코스의 종착지이자 종교 간 화합의 상징으로 불리는 천년 고찰 송광사 십자 종루(사진=정인선 기자)

송광사에는 종교 간 화합의 소중한 사연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 천주교 박해 때 이곳에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을 잘 보살펴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천주교 선교사가 송광사 대웅전 앞에 마로니에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해설과 체험, 어울림이 있는 여행

전주를 찾은 이튿날, 일행은 여행에 해설 등 도움을 줄 가이드 한 분을 만났다. 전라북도관광협회 수학여행콜센터의 수학여행전담지도사 최은주 선생님이다. 경기전 앞에서 만나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전주에서의 두 번째 여정을 시작했다. 수학여행전담지도사는 의뢰가 들어오는 단체나 초중고 수학여행 팀을 전적으로 맡아 관리부터 교육, 해설까지 해주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수학여행 기간 동안 숙식을 함께하면서 아이들의 안전까지도 책임진다 하니 선생님과 학부모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는다고 한다.

전날 일행이 잠깐씩 둘러본 곳이기는 하지만 최 선생님의 해설을 들으며 다시 찾은 전동성당과 경기전, 한옥마을은 다른 색깔로 다가왔다. 해설이 있어 그런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 국내 유일의 어진박물관에 모셔진 왕의 초상화(사진=정인선 기자)

경기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행은 ‘하마비(下馬碑)’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 놓은 석비(石碑)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있다.

“기록에 의하면 1413년(태종 13) 2월에 처음으로 예조에서 건의해 왕의 허가를 받아 나무로 만든 표목(標木)을 세웠다고 해요. 전면에는 ‘대소 관리로서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大小官吏過此者皆下馬)’고 쓰여 있죠. 재밌는 것은 그 내리는 지점도 품계에 따라 각기 다르게 거리를 표시하고 있다는 거예요. 1품 이하는 궐문으로부터 10보, 3품 이하는 20보, 7품 이하는 30보 거리를 두고 말에서 내려야 한다고 해요.”

최 선생님의 설명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마비를 받치고 있는 한 쌍의 암수 사자가 있는데 어느 쪽이 암사자인지 아세요”라고 묻는다.

‘아무래도 조금 유하게 생긴 녀석이 암사자이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암수 구별은 뒷부분을 보면 알아요. 엉덩이가 좀 더 펑퍼짐한 게 암놈이라고 해요”라고 답을 알려주신다.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몰랐을 얘기다. 암수 구분 방법에 허허 웃으며 경기전으로 향했다.

봄, 가을이 더욱 아름다운 곳

어제는 그냥 ‘여기가 경기전이구나’ 하고 말았던 것이 직접 안에 들어가 구석구석 다니다보니 그곳에는 역사와 전통이 흐르고 있었고, 기쁨과 슬픔 등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나무가 많아 봄이나 가을에 오면 더욱 아름답다며, 기왕이면 1년에 한 번 전주이씨 종친들이 모여 종친제사를 지내는 9월 9일에 오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귀띔해주는 최 선생님. 아직 눈이 쌓여있는 길을 지나 예종대왕의 태실비와 태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태실(胎室)은 왕이나 왕실의 자손이 태어났을 때 그 탯줄을 모셔두는 곳을 이르는 것으로 그 형태는 승려의 사리탑과 비슷하다. 그 옆에 세워져있는 태실비는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 위에 세워졌으며, 그 위에는 용무늬를 둔 머릿돌이 얹혀 져있다.

경기전에서 종종 ‘배롱나무’를 만날 수 있는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배롱나무는 일명 ‘간지름나무’라고도 해요. 줄기가 매끈한 것이 관상가치는 있었지만 나무껍질이 없어 양반가의 규수가 있는 별당에는 절대로 심지 않았다고 해요. 나무껍질이 없는 것이 마치 벗은 것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나 봐요.”

아이들이 들으면 귀가 번뜩일만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자칫 무료할 수 있는 수학여행 중간 중간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다음번에 나오는 진지한 설명에도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경기전 안에 있는 ‘전주사고’다. 조선의 여러 실록들을 보관했던 전주사고는 임진왜란으로 다른 사고들의 실록들이 불타 없어졌을 때도 무사할 수 있었다.

안가와 홍가 성을 가진 두 사람이 목숨 걸고 지켰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는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전주사고에서 나와 국내 유일의 어진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선왕조 500년을 이어온 역대 왕들의 모습을 어진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자못 흥미롭다.

물론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의 어진이 불타버려 결국 전해지는 어진은 태조, 영조, 고종, 순종, 철종 어진뿐이고 세종과 정종어진은 추정하여 그린 것이지만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왕들의 모습을 마주한다는 것만으로도 남다른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어진에서 풍기는 강인함과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의 어진에서 느껴지는 인자함을 직접 느끼고 싶다면 국내 유일의 어진박물관의 문이 활짝 열려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경기전에서 나와 한옥마을로 향했다. 전날 일행이 미리 다녀왔던 터라 미처 가보지 못했던 몇 군데를 들렀다. 한옥마을에는 ‘혼불’로 유명한 최명희문학관이 있다.

고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것 같다. 문학관은 1층 전시관 독락재(獨樂齋)와 지하 문학강연장 및 기획전시장인 비시동락지실(非時同樂之室)로 꾸며져 있다.

이번에 일행이 찾은 곳은 전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한옥마을 곳곳과 그 주변 일대를 둘러보면 전통공예나 전통놀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체험공간이라든지, 숙박할 수 있는 곳이 마련돼 있다 보니 수학여행으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전주비빔밥’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들이 먹을 비빔밥을 직접 만들다보니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몇 명이 그룹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대형비빔밥을 만들 수도 있으니 협동심도 길러지고, 같이 어울릴 수도 있고 괜찮은 프로그램 같아요.”

여러 차례 수학여행 팀을 맡아 전담지도사로 활동했던 터라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맡는 팀의 연령이나 취향, 때로는 인원수에 따라 여행코스를 정할 수도 있다고 하니 ‘수학여행전담지도사’ 프로그램이야말로 전라북도 여행에 안성맞춤인 것 같다.

이 외에도 전주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전주공예품전시관, 한지산업지원센터, 대승한지마을, 전주전통문화관, 전주완판본문화관, 전주소리문화관 등이 있다.

한옥마을 골목골목 다니다보면 소규모로 전통공예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많으니 홀로 여행 와서 전통공예를 체험할 수 없을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3)편에 계속됩니다.

[백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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