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라미드호텔전문학교 이사장

 
흙을 닮아서일까?
흙처럼 순수하게 살다 가신 아버지….

어렸을 적이나 칠순이 가까운 지금이나 아버지는 나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각자 자신이 제일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써 내라!”고 하면 나는 으레 아버지 이름을 써냈다. 아버지의 삶 반만큼만 닮고 살아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버지의 자식인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항상 후회스럽다.

많이는 못 하시지만 술·담배를 하셨던 아버지인데, 술에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말은 안 하셨지만 아버지는 항상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 생각하시고 사신 것 같다. 집에서는 술을 아예 안 드셨지만, 친구들과 밖에서 술을 드셔도 술을 깨고 집에 들어오신다.

어느 날 새벽 5시에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셨다. 어머니께서 “아니 주무시고 오시지 그 먼데서 밤새 걸어 오신거요?” 라고 물으시니 “자고 오면 외박이지만 이렇게 밤새오면 외박이 아니잖소!”라고 대답하시며 잠자리에 드신다.

아버지는 유성에서 공주까지 차가 끊긴 후 밤새 걸어오신 것이다.
그런데, 난 이미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국민(초등)학교 때 마른 호박잎을 신문지에 말아 담배 피는 흉내를 내기 시작한 흡연이 중학교 때는 아예 본격적으로 누리끼리한 포장지의 풍년초를 화장실 옆에 숨겨 두고 말아 피웠다.

중학교 때 이미 1m 80㎝로 자란 난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항상 교실 뒷문 가까이에 자리를 앉게 되었고, 흡연하는 학생 몇몇과 어울려 학교 비밀 장소인 자재창고 뒤에서 흡연이 계속 되었다. 이때는 풍년초 봉투의 가루담배가 아닌 궐련을 입에 물고 친구들과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피던 담배를 거꾸로 입안에 숨기는 묘기를 보이기도 하였다.

▲ 김영복 이사장이 어린시절 자신의 우상이었던 제임스 딘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제공: 김영복 라미드호텔전문학교 이사장)
미국 영화 ‘자이언트(Giant)’에서 제임스 딘(James Byron Dean)이 카우보이모자를 눌러 쓰고 담배를 꼬나문 모습은 그 당시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다. 아마 이 영화는 당시 젊은이들이 흡연을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흡연은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뜯지도 않은 ‘아리랑’ 담배가 들어 있었다. 이상하다는 의문은 잠시고 기분 좋게 학교 친구들과 나눠 피웠다. 그런데 그 이튿 날도 역시 내 호주머니에는 ‘아리랑’ 담배가 어김없이 들어 있었다. 3일째 되는 날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내 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때 아버지께서 내 방에 들어가셨다 나오시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나는 얼른 방에 들어가 교복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역시 호주머니에는 ‘아리랑’ 담배 한 갑이 들어 있었다. 담배를 꺼내 들고 안방으로 들어 가 아버지 앞에 담배를 놓고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잘못 했습니다.” 아버지는 정색을 하시며 “무엇을 잘못 했는데?”
“담배 피우는 것을요”

“아니 담배 피우는 것 잘못 된 것 아냐 난 우리 아들이 이렇게 커서 담배를 피울 정도가 된 것에 대해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참 많이 컸구나. 우리 아들….”

“아닙니다. 잘못 했습니다.”
“그래 뭘 잘못 했는지 설명해 봐, 애비가 알아듣게.”
난 금세 가슴이 치밀어 오르며 먹먹해지는 것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직 저는 학생입니다.”

“학생이라…. 그래 바로 그거야. 너는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한테 용돈을 타 쓰며 공부하는 학생야. 니가 무슨 돈으로 담배를 사서 피우냐? 나나 너의 엄마가 네 담배 값을 주지 않는데, 결국 너는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담배를 구해서 피우는 거겠지? 그래서 애비가 너에게 담배를 사 주는 거야!”

나의 눈에는 이미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크는 동안 아버지 속을 많이 썩여드렸는데, 아버지로부터 “야 이놈아!” 소리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용서하세요.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습니다.”

“뭘 용서하고 왜 담배를 피우지 않겠는지 설명해 봐!”
“공부하는 학생이 담배를 피운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지 않겠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몰래 담배를 피우려면 이 담배 네가 가지고 가라! 그렇지 않다면 애비가 가져가겠다. 아버지와의 약속이지만 네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그 약속 지키겠니?”
“네….”

“그래 널 믿으마. 학교 늦겠다. 빨리 가거라!”
아버지와의 약속, 아니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난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다. 한국군에서 나온 ‘화랑담배’와 월남전 보급병이었던 내게 영국제 ‘켄트(KENT)’, 미제 ‘말보루(Marlboro)’는 아무 상관없는 보급품이었다.

초로(初老)에 접어든 지금 40여 년 동안 아버지와의 그 약속 때문에 나는 건강한 몸으로 살고 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효(孝)를 다하지못한 불효한 자식이지만 아버지를 존경하며, 아버지를 닮아가려는 나는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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