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60주년 기념 및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 비전(7)

1989년 11월, 독일을 둘로 갈랐던 베를린 장벽이 끝내 무너졌다. 세계인들은 독일의 통일을 이뤄낸 건 결국 동서독 국민들의 의지라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독일의 통일과정과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또 독일 통일 이후 1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문제들이 남아 있다. 독일과 같은 후유증을 겪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과제들도 알아보자.

▲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 인터뷰

‘이웃사랑’ 실천에 옮겨
하나란 생각으로 교파 초월
정치적 분단 형제애로 극복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동서독교회가 그랬듯이 우리도 분단과 이념을 넘어 화해자로서 하나의 신앙적 유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의 말이다.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종교’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독일은 무력 통일이 아닌 평화적 흡수통일을 했다는 점에서 국내에 많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김 회장은 “동·서독의 통일이 비록 많은 부작용과 문제를 가져왔으나 잘못되거나 실패한 통일은 아니다”면서 “적어도 동독 주민의 마음을 샀던 상태에서 이룩한 통일이자 주변국이 동의한 통일로, 이보다 더 좋은 형태의 통일은 없다”고 말했다.

본지는 김 회장을 만나 통일 전 서독교회와 동독교회의 역할, 아울러 남북통일과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해 국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 독일 통일과 종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독일 통일은 기본적으로 동독 주민이 요구한 것이다. 그 요구는 시민혁명을 통해 분출됐다. 시민혁명은 교회에서 이뤄진 ‘평화의 기도회’에서부터 시작됐다. 동·서독이 분단됐을 때도 교회는 같은 성서를 읽고, 같은 찬송을 불렀다. 그리고 이들 모두 기독교 복음의 정신인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구체적으로 동독교회는 분단 당시 사회주의 정권의 탄압 속에서 주민에게 유일한 피난처였다. 서독교회는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1948년 창설된 초교파적 연합기관인 독일 개신교 연합회는 양 지역 교회의 공존을 위해 노력했다. 종교대회는 이를 확인하는 행사였다. 1949년부터 2년마다 개최된 이 대회는 연합회 산하 모든 독일 교회가 모이는 대화의 장소였다. 종교대회는 1980년대부터 청소년이 대거 참여하면서 동·서독교회가 함께 참가하는 평화운동의 성격을 띠게 됐다. 평화를 바탕으로 한 이들 교회의 교류와 협력은 동·서독의 긴장을 약화시키는 촉매제였다. 즉 통일은 분단 아래서도 계속된 교회의 교류와 협력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 동독에서 평화시위가 발생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우선 라이프치히라는 도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곳은 상업 도시이자 문학과 음악분야에서도 전통이 있는 곳이었다. 바흐도 이곳 출신이다. 그 도시 한복판에 독일 통일의 불씨가 된 니콜라이교회가 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평화 혁명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이 교회는 1982년부터 매주 월요일 인류를 위한 평화의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가 평화시위로 이어진 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이곳은 1985년 세계 최초 표준 박람회가 열리는 등 세계의 흐름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구소련의 흐름도 동독의 다른 지역보다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당시 동독은 구소련의 후견국가라고 볼 수 있었다. 구소련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을 외치니 이 소식을 들은 라이프치히 시민들, 특히 종교인들은 자연스레 이를 의식하게 됐다.

또 한 가지는 1989년 6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막고 있던 철조망이 제거되면서 당시 동독 여행자들이 서독으로 탈출하기 시작, 서방국가로 휴가를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불만이 생겼다. 그러면서 토론과 기도하는 데 그쳤던 평화의 기도회가 그해 9월 4일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흥분하기 마련인데 종교인이 주축이 돼 시작된 이 시위에서 참석자들은 폭력만은 안 된다는 데 공감했다. 이후 동독 곳곳에서 평화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는 교파를 초월한 종교인사, 재야인사, 그리고 국민이 함께한 민주주의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서독교회를 통해 우리나라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서독 교회는 정치적 분단을 극복, 형제애로써 동독교회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원했다. 또 통일보다는 상호 신뢰성을 쌓고 동독 주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신장하는 데 초점을 두고 도왔다. 서독교회는 독일부터 통일이 돼야 세계평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특히 동독 지원은 기독교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정치와 제도적 장애를 초월해 이루어져 동독 주민을 돕는 데 더 실질적이고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회는 신앙공동체로서의 공론의 장이다. 동·서독은 분단이 됐어도 단절돼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단절돼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쪽의 교회만이라도 ‘모든 것은 대화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 특히 인도적 지원은 동독 주민이 인식하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통일의 밑바탕이 됐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중심에 교회가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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