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처우개선100만서명국민운동본부 최기용 상임대표

▲ 소방관처우개선100만서명국민운동본부 최기용 상임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현충원 국립묘지에 소방관묘역 설치하는 성과 거둬
의족·의수 착용하고도 소방관들 후생 복지 위해 봉사

[천지일보=박혜옥 기자] 직업 만족도 최하위, 평균수명 58세, 임용 5년 내 이직률 20%, 국가지원율 1.5%, 40% 집단 우울증…. 이는 대한민국 소방관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를 대변해주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소방관들의 현실적인 처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이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전국의용소방대연합회 상임 고문이자 소방관처우개선100만서명국민운동본부(소국본) 최기용 상임대표다.

최기용, 쟈니윤, 이창우 등 3인의 공동대표와 배선장 운동본부장이 함께 이끌고 있는 ‘소국본’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다 다치거나 숨지는 소방관들의 희생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국민운동을 전개하자는 취지로 2011년 2월 14일 발족됐다. 현재까지 지지한 서명자는 6만 2000여 명.

소국본은 소방관들이 노후 장비, 진압 장비 지원 부족 등으로 순직하는 일이 없는 안전한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또한 유가족과 국민의 가슴에 자랑스러운 소방영웅으로 기억될 수 있는 문화 조성, 순직 시 군경에 준하는 위상과 소방독립묘역 조성, 국립묘역 소급 안장 등 관련된 법과 처우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 결과 민주통합당 이상민 의원의 발의로 작년에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에 별도의 소방관묘역을 설치할 수 있게 되는 성과도 얻었다.

최 대표와 소방과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신이 임대해준 건물에 화재가 발생해 진압에 나선 소방대원들이 고생하는 걸 본 그는 도와줄 방법을 찾다가 성동소방서 의용소방대에 입대, 보급반장을 맡았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최 대표는 ‘불의 사나이’로 불리며 인명구조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힘든 고비도 여러 번 있었다. 최 대표는 오른쪽 팔과 다리에 의수와 의족을 착용하고 있다.

그는 1995년 용산 옥외변전실에서 발생한 정전사고 진압을 돕다가 2만 2000볼트 전기에 감전돼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당시 대수술만 7번을 받았고 의사들조차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평소 활동적이었던 그 역시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라는 생각에 삶을 놓아버리려고 수면제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병문안 온 친구들과의 약속이 그를 일어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형님, 일어선다는 약속 안 하면 안 갈 겁니다.”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걱정은 최 대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물론 최 대표의 강인한 정신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기적적으로 4개월 만에 의족을 착용하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

“새벽 2시 반에 일어나서 계단을 이용해 운동을 했어요. 다치고 나니 뼈만 남아 서지도 못했지만 운동을 하니 살이 붙더라고요.”

최 대표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4개월 동안 6200여 명이 병문안을 왔는데, 이는 MBC ‘이야기 속으로’에도 방송이 될 만큼 화제가 됐었다.

이는 평소 사람 좋아하고 높고 낮은 구별 없이 베풀기 좋아하는 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그는 윗사람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대쪽 같은 성품과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대중 대통령 정권 때 서부소방서(현재 은평소방서)에서 소방관 6명이 순직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 대표는 대통령이 오실 줄 알고 기다리고 있는데 대통령이 안 오고 정부 수석이 왔다고 한다. “6명이 순직했는데 정부 수석을 보내고 소방이 이 정도밖에 안 되냐”며 화가 난 그는 쓰던 모자를 벗어 던졌다. 분향하고 있었던 이화여고 학생들에게 분향도 하지 말라고 했단다. 영결식에 참석한 대통령을 직접 뵙고 나서야 모자를 다시 썼다고 한다.

김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그는 “소방방재청 되게 해주세요. 소방을 사랑해 주실 거죠?”라고 되물었고 김 대통령은 “알았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러한 불굴의 의지를 높이 산 전국의 의용소방대원들은 그를 2001년 9대 회장에 이어 2004년 3월 10대 전국 연합회장으로 선출했다.

최 대표는 2004년 6월 소방방재청이 출범하기까지 전국적으로 120만 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 국회에 청원하는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연합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최 회장은 국민의 안전의식 고취와 의용소방대원을 격려하는 일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에게 소방관의 길을 걸어오면서 힘든 점에 대해 물어봤다.

“‘딸 백일잔치에 오세요’라고 말한 후배 동료가 며칠 뒤 어린아이를 구하다가 물에 빠져 숨진 사건이 저를 얼마나 힘들 게 한지 몰라요.”

그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소방관 평균 수명이 59세가 안 됩니다. 소방관의 수명이 짧은 이유는 동료가 순직했다하면 못 해준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어요. 또한 시신까지 처리하다 보면 밥도 못 먹고 스트레스 쌓이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또한 최 대표는 “사람을 구했을 때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어요”라며 “사고는 순간이라면서 사전에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소방관이 살아야 국민이 삽니다. 소방관이 좀 더 가족과 함께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바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국본은 다음카페(http://cafe.net/firekings)를 개설해서 사이버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소방관처우개선100만서명운동이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실천 속에 대한민국 소방대원이 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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