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다가오는 7월 27일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북한에게 7.27은 단순한 휴전협정 체결일이 아니라 이른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이다. 현재 북한의 강경공세는 7월 27일을 그 종착일로 정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 2월 16일 김정일 생일 행사가 끝나자마자 ‘전승기념축전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고 현재 중국에 당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물자구매단이 파견돼 군사퍼레이드 물자들인 군용 찝차와 트럭, 각종 선물, 생필품들이 대량으로 구매되고 있다.

또 김정은에게 하얀 원수 군복을 입혀 1953년 7월 27일 김일성의 모습 그대로 등장시키기 위한 준비도 착실하게 다그치고 있으며 김정은 시대를 함께할 군부 인사들에 대한 벼락진급도 준비되고 있다. 이로써 김정은의 김일성 닮기 프로그램은 일단락되게 된다. 지난해 이설주를 내세운 김정은의 ‘어른 만들기’에 이어 올해 초반의 ‘장군 만들기’에 이어 7.27 ‘수령 만들기’로 피날레를 장식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북한의 프로그램이 그들의 의도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질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지난해 9월부터 북한의 권력지형은 가파롭게 요동치고 있다. 김정은의 가장 유력한 후견자였던 장성택의 권력이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김경희의 건강도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원래 총참모장 이영호와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우동측 등을 제거하면서 장성택은 “나는 새로운 지도자를 둘러싸고 있는 구세력을 몰아내고 나도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공언했는데 실제로 당 행정부장직을 내놓고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란 주변부로 나앉았다. 하지만 형식적이나마 장성택은 지난 4월 1일 소집된 최고인민회의 주석단의 김정은 바로 왼쪽에 앉은 데서 볼 수 있듯 북한의 제3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정일은 숨을 거두면서 이영호와 우동측 등에게 “김정은이 나이 40이 될 때까지 그의 곁에서 잘 돌봐주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장성택이 그들을 일거에 제거했으니 뒤탈이 없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군부를 무조건 신뢰하는 건 아니다. 지난 3월 31일 진행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개편된 정치국 인사들을 보면 군부가 많이 견제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군 서열 2위(1위 총정치국장 최용해)인 현영철 총참모장, 3위인 김격식 무력부장에 이어 인민보안부장 최부일 대장 등이 정치국 후보위원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북한 무력의 3대 수뇌가 정치국 정위원으로 선출되지 못한 경우는 북한 정치사에서 이번이 처음이란 데서 김정은의 군부견제 의지를 알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김정은은 군축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게 군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북한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당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핵무력 건설 병진 선언은 곧 군비를 핵무장에 치중하면서 비대한 일반 무력을 줄여 산업분야로 돌릴 수밖에 없는 북한의 속사정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다. 김정은 등장 후 2010년부터 1년 사이 북한군 부사단장급 이상 고위 지휘관 150여 명이 군복을 벗은 가운데 지난 1년 사이 군단장 4명 교체, 사단장 9명 교체라는 파격적 군부 흔들기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군이 북한 체제에 붙어 있는 거대한 혹이란 걸 김정은이 일치감치 알아챈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과연 막강한 군부의 군살을 도려내면서 김정은이 위태로운 노동당 지배를 지속할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 군부는 체제의 최고 엘리트들을 보존하면서 권력의 정상을 누려왔다. 우리가 근대화 과정에서 군부 엘리트들이 법조계, 금융, 산업 분야로 옮겨간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김정은이 7.27을 기점으로 체제전환에 돌입한다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 반대로 갈 경우 우리는 한반도의 새로운 위기관리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레짐 첸지 그 새로운 과정이 시작될 것인즉, 보다 결단력 있고 과감한 대북정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신뢰프로세스란 거시적 통일정책 궤도에서 벗어나는 일은 절대로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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