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된 민속놀이


▲ 17일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개막한 ‘2013 청도 소싸움 축제’에서 싸움소들이 마지막 한판 승부를 걸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도박 가능 상설 경기, 주말마다 열려
“도박으로 돈 벌려는 정치인 이해 안가”
사행성화 되는 민속문화… 지역 이미지 퇴색 우려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국내 최대 규모의 소싸움 대회인 ‘청도 소싸움 축제’가 지난 17일 청도 소싸움경기장에서 개막했다. 국내 최대 규모답게 이번 축제에도 싸움소 90여 두가 멋진 한판 승부를 펼친다. 대표적인 민속축제로 자리매김한 청도 소싸움 축제에는 올해도 많은 인원이 행사장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한편에선 청도 소싸움이 사행산업화돼 지역주민 및 관광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청도 소싸움이 인기를 끌자 매 주말마다 상설 경기장에서 베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

올해로 세 번째 청도 소싸움 축제를 찾았다는 사공성만(69, 남, 경상남도 김해시 상계동) 씨는 개막일인 17일 부인과 함께 소싸움 경기장을 찾아 박진감 넘치는 싸움소들의 숨 막히는 릴레이를 지켜봤다.

박 씨는 “깨끗하고 자연경치 아름다운 청도에서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소싸움을 보니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소들이 사행산업에 이용돼 보기 불편하다”며 겜블링이 가능해진 청도 소싸움의 변질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도박산업으로 돈 벌려고 드는 정치인의 생각이 이해가 안 간다. 건전한 오락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청도 소싸움은 지난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토‧일요일에 겜블링(도박)이 가능한 상설 경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청도 소싸움 축제 기간(4월 17~21일)에도 주말이 끼어 토, 일요일엔 도박이 가능하다.

이번 개막식은 평일이라 당일에는 베팅을 할 수 없었으나 우권을 구입할 수 있는 매표권이 마련돼 있어 도박장 분위기를 더했다.

▲ 청도 소싸움 베팅을 위한 구매표 옆에 도박 중독을 예방하는 홍보물이 세워져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국내에서 시행되는 사행산업은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체육진흥투표권이 있으나 지난 2011년부터 청도 소싸움도 베팅이 합법화되면서 총 7종으로 늘어났다.

청도 소싸움은 한 번에 최대 10만 원까지 돈을 걸어 베팅할 수 있는 경기 운영을 위해 2011년 9월 상설 경기장을 오픈했다. 당시 개장 첫날에 베팅 액수가 6000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에 청도 소싸움의 사행성 논란과 지역 공동체 황폐화 조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무엇보다 공공기금 조성을 목적으로 민속놀이의 본질을 도박으로 물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청도 소싸움은 매년 봄 청도군에서 열리는 민속축제로 국내에서 열리는 소싸움 축제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소싸움은 우리 고유 민족의 놀이문화로 소싸움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문헌상 기록은 없으나 경상남도 일대와 경상북도 청도 등 이른바 ‘가야문화권’에서 발달됐다. 마을과 마을 간의 대항전이 주를 이뤘고 소싸움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은 마을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단합을 다졌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청도군이 지난 1990년부터 공식 타이틀을 내걸고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청도군이 ‘청도 소싸움’을 신(新)레저사업으로 밀면서 사행성 논란이 일어나게 됐다. 2011년부터 겜블링이 가능한 상설 경기장을 운영한 청도군은 도박으로 그해 총 17억 원의 매출(사행산업통계정보포털 매출액현황)을 기록했다.

군은 사행성 논란과 민속놀이 본질 훼손에 대해 ‘감시 인력을 늘려 불법도박 방지에 힘쓰겠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상설 경기장에서는 하루에 10경기가 운영되며 경기당 주어진 시간은 30분이다. 1인당 한 경기에 한 번만 우권을 구입해 도박할 수 있다.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문화산업을 공공기금 조성 목적으로 사행화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민속놀이가 도박화되는 것도 문제지만 사행문화를 확장해 공공기금을 조성한다는 지자체의 접근 방식도 건전하지 않다”며 “사행산업이 장기화될 경우 지역 고유 이미지와 정서를 퇴폐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때 소싸움 ‘동물학대’ 논란이 일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보호법 예외 규정에 따라 민속소싸움은 민속놀이로 보고, 전국 11개 소싸움대회는 동물학대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