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주필)

 
‘형님, 꼭 한 번 내려 오이소. 봄 도다리 쑥국이 기찹니다. 죽입니다.’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거제도 출신의 아끼는 지인, 김옥만 아우의 이런 제안이 내 마음을 무척이나 들뜨게 했다. 도다리만도 좋은데, 거기에다 봄 향기 물씬 풍기는 봄 쑥과 함께 푹 끓여 우려낸 도다리 쑥국이라! 이거야말로 미각보다도 환상을 먼저 한껏 자극하는 찰떡궁합의 음식 조합 아닌가. 이런 제안부터가 올 봄은 뭔가 좀 특별할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했다.

거제도는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황사도 없고 건강에 해로운 미세먼지도 없는 무공해 청정 지역이라고 김옥만 아우는 말했다. 일단 그곳에 들어서면 사나운 바닷바람과 거센 파도가 섬을 뒤덮거나 날려버릴 것 같은 그런 공포, 말하자면 ‘섬 공포(Insular-phobia)를 안겨주는 작은 섬이 아님을 금방 실감할 수 있다던가. 그만큼 광대한 땅덩어리의 육지 같은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안겨주는 큰 섬이 거제도라고 그는 말했다.

큰 섬이라서 땅도 넓고 산도 깊어 숲 속에는 팔색조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멧돼지가 무리지어 뛰어논다고? 도다리만이 아니라 속풀이에 그만인 대구, 최고의 안주감인 아귀, 고소한 맛의 죽방멸치로 말한다면 그거야말로 거제도를 빼고서는 어불성설이 된다나? 섬이 아름답기에 인심도 아름답단다. 더구나 봄을 맞는 여인네들의 얼굴은 굳이 돈 들이고 피부샵에 가지 않더라도 봄볕에 그을리기는 해도 항상 밝고 곱고 예쁘다고 했다.

그런 큰 섬의 밝은 낮은, 특히 봄의 양광(陽光)이 포근히 내려앉는 낮 동안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마음에 찍히어 오래도록 새겨지는 빼어난 풍경화의 작품이 될 것이라나. 그 뿐인가. 달빛 쏟아지는 몽돌해수욕장의 해변에 널린 자갈밭을 구르는 파도 소리는 사람의 넋을 홀딱 빼놓고도 남는단다. ‘스르르… 스르르륵… 스르르…스르르륵…’ 남쪽 바다의 잔잔한 물결이 달빛에 부서지면서 이런 리듬과 소리로 해안의 작은 조약돌들을 굴리고 되굴리며 밀려오고 물러가기를 끝없이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이는 바다가 들려주는 태고(太古)의 ‘바다 이야기’, 영겁(永劫)에 걸쳐 율동을 멈추지 않는 파도가 들려주는 불후(不朽)의 명곡 ‘파도의 노래’가 아닌가. ‘순간의 존재’인 사람은 그저 바다가 들려주는 이런 영원한 노래와 이야기에 할 말을 잃고 미동(微動)조차 잊을 만큼 숙연해질 뿐일 것이다.

‘아무개’의 거제도 자랑이 이쯤해서 끝난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보다 훨씬 전에 거제도로 휙 날아가 있었다. 들은 얘기를 길잡이 삼아 마음의 눈으로, 상상의 더듬이로 구석구석을 뒤지고 감상하며 탐구와 탐방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봄을 맞을 때마다 봄꽃의 완상(玩賞)과 상춘(賞春)을 겸한 다소는 먼 거리의 봄 여행을 꿈꾸었지만 여러 해 동안 불발로 그쳐왔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봄 여행을 더욱 갈구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더구나 호형호제의 특별한 인연을 따라 쉽게 가는 특별한 기회가 아닌가. 잠시 다 버리고 한 번 떠나 본다? 사실 무엇을 버리고 말 것도 없지 않나?’ 이러면서도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이렇게 망설이는 나를 결정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불도저 내지 탱크 같은 뚝심의 사나이, 그러면서도 일구월심(日久月深), 나에게 뜨거운 정을 베푸는 의제(義弟) ‘제이(J)’ 모 로펌 회장 김동길이다. 그는 기본이 곧고 바른 사람이면서 낭만이 있다. 흔히 하는 농담으로 인생의 길이(Life span)가 몇 학년까지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김동길은 5학년에 한 동안 더 머물러도 되고, 김옥만은 6학년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나는 여전히 찬 겨울 소나무처럼 시들지 않고 젊음을 잃지 않은 당당한 6학년 중급반이다. 그러니까 셋 중에서는 내가 가장 상급반이다. ‘나이가 벼슬’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가장 저학년인 김동길은 나를 큰 형님, 사업가이지만 중용지덕(中庸之德)을 실천하는 신사인 김옥만을 그냥 형님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비록 가는 길은 다르고 그 길이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나면 항상 즐겁고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그렇지만 아우들은 내 걱정을 가장 많이 한다. 셋이 모일 때 입담이 가장 센 사람은 막내 김동길이다. 그의 형님 김옥만은 그를 가끔은 이기지만, 큰 형님인 나는 그에게 거의 항상 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비 관우 장비와 같이 말의 피를 마시며 도원결의를 한 사이도 아니며 시정 골목에서 이루어지는 ‘결의형제’의 사이는 더욱이나 아니다. 감히 농으로라도 붕당(朋黨)으로 갈 생각이 추호라도 있는 것처럼 오해받을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겠다. 굳이 말한다면 중국 남송(南宋)의 선승 무문혜개(無門慧開)가 말한 ‘만 갈래 길이 있는 것(天差有路/천차유로)’이 세상 이치이고 철리이지만 ‘넓어서 문이 없어 보이는 큰 길(大道無門/대도무문)’을 ‘하늘과 땅 사이에서 당당히 걷는 것(乾坤獨步/건곤독보)’을 피차가 지향하는, 꽤는 어색하고도 거창하지만 말하자면 그런 허허로운 ‘우의(友誼)’의 사이라고나 할까. 우리의 우의는 진하지만 우리 셋에게는 서로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누구에게도, 어느 세상을 향해서도 닫힌 문이 없다.

4월 중순의 한복판인 어느 날, 오후 4시 넘어 부산행 KTX 표를 끊어 연락하겠다던 김동길 아우가 느닷없이 3시에 전화를 걸어 3시 30분 차표를 간신히 구했다고 빨리 서울역으로 나오란다. 겨우 30분 여유를 주며 불 같이 재촉한다. 부랴부랴, 주섬주섬, 모임에 참석했던 자리를 허겁지겁 정리하고 일어섰다. 논산 육군 훈련소에서 선착순 해본 이후 처음으로 6학년 넘은 나이에 눈썹이 휘날리도록 죽으라고 뛰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간신히 그가 애간장이 녹듯 초조히 기다리는 서울역 플랫폼에 도착했다. 숨을 헐떡이며 열차에 오르면서 차는 떠나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열차를 놓칠 뻔했다. 경부선 KTX는 역시나 빨라서 그야말로 나는 것 같았다. 겨우 2시간 30분 후 나에게는 아우, 막내 김동길에겐 형님인 김옥만이 반갑게 맞이하는 부산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나 가장 품격(品格)있는 모임이라는 셋이서, 보통은 시간을 죽이는 것이 여행이며 놀이지만 일각의 로스타임(Loss time)도 없는 알찬 여행 스케줄을 느긋이 소화하며 모처럼 상춘 여행의 꿈을 이루었다. 이것이 이 봄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이다.

그런데 아뿔싸! 거제도에 도다리는 많지만 철이 지나버려 도다리 쑥국은 없었다. 서울의 봄은 이제 절정으로 들어가는데 남녘 거제도의 봄은 벌써 꼬리를 빼었기에 한두 주 전 김옥만 아우가 그렇게 오라고, 내려오라고 했던 때가 딱 제철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도다리 쑥국 못지않은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들이 지천에 널린 곳이 거제도여서 도다리 쑥국이 없었다고 섭섭함이 남을 이유는 없다. 금수강산 우리 대한민국의 어느 한 곳, 절경 아닌 곳이 없지만 거제도는 보수 없는 명예 홍보대사임을 자임하는 ‘아무개’의 자랑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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