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를 고심 끝에 임명했다. 아니 고심이나 제대로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뭐라 하든, 내가 결심하면 하고 말겠다는 식이라면 고민 같은 것은 애당초 사치에 불과하다. 적당하게 타이밍을 잡아서 여야 정치인들을 들러리 세운 뒤에 그냥 임명해버리면 끝이다. 괜히 여론을 좇아 중도 사퇴시킬 경우, 다시 새 인물을 골라야 하고 또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하는 것보다 몇 배 낫다는 계산일 것이다. 게다가 중도 사퇴도 이제는 지긋지긋해 보인다. 그냥 눈 딱 감고 밀어붙여서, 잠시 소나기를 맞는 심정으로 버티면 된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새누리당은 다른 목소리 내기 어려울 것이고, 여전히 헤매고 있는 민주당의 반발쯤이야 대충 무시해도 된다고 봤을 것이다. 윤 장관 임명에 대한 여론의 비판도 강하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 왜 했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준 윤진숙 장관의 자질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이다. 인사청문보고서도 채택하지 못했을 뿐더러 민주당은 지명 철회와 자진사퇴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심지어 새누리당도 임명 반대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을 정도였다. 임명 직후 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도 국회 브리핑에서 “윤 장관의 업무능력과 역량에 대해 많은 국민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장관 임명 직후에 여당 대변인이 이런 논평을 낸 것은 초유의 일이다. 더욱이 새 정부 초대 내각이 아닌가.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정치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 9일,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만찬에서 당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국회와의 소통을 직접 청와대 참모들에게 지시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자신의 의지를 접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도덕성에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자질이 부족하다고 여야가 한 목소리로 외쳐도 “나는 내 맘대로 하겠다”는 식이라면 굳이 인사청문회를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대통령도 국민이 뽑았지만 국회의원 역시 국민이 뽑은 국민의 대표다.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하는 취지는 국회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과정을 통해 국민의 눈높이 맞게 인선을 하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국회인사청문회를 우습게 보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요식행위로만 보는 것인지 번번이 국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 얼마 전 정부조직법개정안 협상이 막바지에 있을 때는 ‘대국민 담화’로 여야 협상에 찬물을 끼얹더니, 이번에는 정무위에서 경제민주화법 논의를 막 시작할 때 사실상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는 발언까지 했다. 그리고 여야가 모두 반대하던 윤진숙 장관까지 마음대로 임명해 버렸다. 이쯤 되면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회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민주당의 태도이다. 명색이 비상체제인데도 어떤 비상함도 보이질 않는다. 안보정국, 민생정국을 명분으로 오히려 청와대 나들이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윤진숙 장관에 대해서도 임명을 철회하지 않으면 청와대 만찬에 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지난 16일, 은근슬쩍 청와대로 몰려가서 밥을 먹고 왔다. 바로 다음날 박 대통령이 윤 장관을 임명해 버리자, 박용진 대변인은 다시‘불통정치’ 운운하고 있다. 정말 쇼를 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이런 야당이 여태껏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민주당에게는 무슨 기대를 걸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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