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옛날이야기에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는 선비가 자주 등장한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도보로만 수십 일 걸려 먼 길을 오갔으니 그 과정에서 사연도 많았을 것이다.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의 주인공도 한양에 과거보러 가던 선비가 박달재의 주막집 예쁜 딸 금봉이와 눈이 맞아 사랑에 빠졌으나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말았다는 사연을 담고 있다.

옛 이야기에 등장하는 선비들은 누군가에게 신세를 졌으나 과거에 합격하고서도 모른 체 하는 배은망덕한 인물이거나 반대로 톡톡히 은혜를 갚은 미담의 주인공이다. ‘춘향전’의 이 도령처럼 극적인 반전의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과거와 선비 이야기가 뭔가 낭만적이고 애틋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람 사는 이치나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 과거는 출세를 보장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과거에 매달렸다. 20대나 30대에 합격한 이들도 있지만 평생 죽을 때까지 과거 공부만 한 이들도 많았다.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환갑을 지난 노인이 뒤늦게 과거에 붙기도 했다. 과거에 붙었다 하면 시골에서는 평생 으쓱거리며 살았기 때문에 선비란 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과거에 사활을 걸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과거에는 부정부패도 많았다. 시험 관리인이나 고관에게 뒷돈을 주고 합격하는 것은 예사고 문벌이나 정파에 얽매여 합격자를 엉터리로 뽑기도 했다. 이러니 줄 없고 배경 없는 시골 선비들에게 합격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과거 시험장에서 벌어지는 부정도 가관이었다. 서울의 권문세가 자식들이 주로 부정을 하는데, 글 잘 하는 선비와 대동하여 시험지를 바꿔치기 하거나 종을 시켜 다른 사람이 대신 작성한 답안지를 가져오기도 했다. 시골에서 괴나리봇짐에 짚신을 걸고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걸어 겨우 서울에 도착한 시골 선비는 허망하게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나마 문과는 양반들만 응시할 수 있었고 천민은 문과와 무과, 잡과 어느 곳에도 나설 수 없었다. 서자들도 문과에 응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 과거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분을 못 이겨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홍경래는 과거를 보았으나 부당하게 떨어졌다며 난을 일으켰다. 서자 출신인 홍길동이 무리를 이끌고 나라를 떠나 율도국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과거 시험에 폐단이 많다 하여 제도를 새로 고치거나 아예 없애버리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기득권층의 반발로 수용되지 못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사라졌다. 일제 때 과거 대신 만들어진 국가고시 제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과거 제도와 달리 지금까지도 공정성 시비에 크게 휘말리지 않고 있다.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역사다.

요즘에야 조선시대 과거처럼 대놓고 부정부패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입시 등 인재를 뽑는 과정이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 간 계층 간 교육 기회 불균형이 심하고, 이로 인해 교육 현장에서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소리가 자꾸 나오면 변이 생기게 마련이다.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도 위험하다. 기득권이 득세하는 사회가 돼서도 안 된다. 수월성 교육을 한다면서 교육을 양극화해서도 안 된다. 경쟁도 필요하지만 더불어 사는 법도 배워야 한다. 국민통합이란 게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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