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준(서울시 서초구)

▲ 최석준(서울시 서초구)
철이 들었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어렸을 땐 철이 들고 안 들고의 기준이 무엇인지 몰라 혼란스럽기도 했다. 아직도 명확한 기준점은 찾지 못했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부모님의 대한 그리움이 생기면 ‘철이 들었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부모님이 그리웠던 적은 태어나서 지금이 2번째다. 처음에는 군대였다. 한 달 넘게 연락이 두절된 채 부모님 볼 날만 기다렸던 시기다. 그 때 당시에도 부모님이 그리웠지만 지금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어찌됐든 군대의 끝은 부모님과의 상봉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물론 보고 싶을 때 보러 가면 그만이지만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지금, 어릴 때 느꼈던 그리움과는 사뭇 다른 감정으로 그리움을 접하게 된다.

결혼을 하면 갑자기 효자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어쩜 그리 잘 들어맞는지. 결혼을 하고 하나의 가정을 이룬 큰 기쁨을 누림과 동시에 한 쪽에서는 그리움이 싹 튼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런 그리움을 해소하기 위해 같이 살면서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하려고 노력한다. 생전 부모님과 가지 않던 나들이도 가보고, 밤에 불현 듯 생각나서 전화도 해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밥은 잘 먹고 있나 라는 생각까지 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저녁은 먹었는지 걱정이 된다. 평소에 드리지 않던 용돈도 두둑이 챙기고 더 못줘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서비스로 얹는다. 스스로도 놀랄 때가 많다.

소싯적에 엄마 옷장에서 세종대왕님을 몇 분 몰래 모시고 나오다가 걸려서 혼나고, 아버지 옷장에서 새로 산 양복을 내 멋대로 가지고 나와 사이즈를 줄여서 입고 다니다가 된통 혼나는 등 실망과 아쉬움만을 안겨준 나였는데 이제는 부모님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경 쓰이고 챙기고 있으니 말이다.

마음이 이렇게 변하고 행동도 부모님 지향적으로 변하니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철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난 그냥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고 그로 인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애정을 쏟고 있는 건데 주변사람들은 ‘철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철이 들었다는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내가 그만큼 부모님을 마음 속 깊이 생각한다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여러분도 철 한번 들어보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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