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모처럼 여야 정치인이 한목소리를 냈다.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 한반도 내 긴장감이 상존하는 가운데 12일 청와대에서 마련한 민주통합당 지도부 및 상임위원장 초대 만찬에서 보인 성과다. 1야당이 안보 문제와 민생을 위해서라면 박근혜정부에 대한 적극 협조 다짐은 당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과 국가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점에서 바람직한 태도다. 야당이 정부조직법 늑장 처리로 정부의 발목을 잡아왔던 때와는 영 딴판이다.

최근의 가파른 남북 간 대치로 인해 한반도의 정세가 극히 우려되는 지금은 굳건한 안보 태세가 필요할 뿐이지 여야가 따로 없는 것이다.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한 마음으로 국정을 살피고 다지는 일에 정치인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이것은 정치의 본래적 도리(道理), 국민을 위해 지도자가 가져야 할 바른 자세다. 정치란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극복·개선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국민이 원하는 바를 실현시켜주는 다리 놓기가 아닌가.

하물며 한반도 상황으로 인해 국제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마당에 당사자인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안보 현실을 외면한 채, 여야가 싸움질만 한다면 정치인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 배경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지도자를 청와대로 초청, 현실의 안보 상황을 설명하여 국정이 안정되고 국민이 안심하도록 정당의 협력을 얻는 노력은 잘 한 것이다. 한편으로 대통령이 국가적 대사를 두고, 정치권과 함께 테이블에 앉은 자체가 의미 있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고, 상황이 꼬일수록 국가와 국민 이익이 우선돼야 한다. 국민은 정치계의 놀음에 무작정 놀아나는 바보가 아니다. 정부 출범 한 달이 지나도록 내각조차 구성하지 못한 그 배경이나 더욱이 현 정부에서 고위층 인사와 관련된 검증과정에서 청와대 인사위위원회가 느슨한 시스템으로 문제를 일으켜 줄줄이 낙마한 사례도 국민이 다 알고 있다. 다만 정치가 잘 되기를 바라며 참고 견딜 뿐이다.

이젠 민도(民度)의 촉수가 높아졌다. 언론과 시민집단의 활동이 활발해져서 날이 갈수록 권력의 장막에 드리워진 안개가 걷어내지고 있다. 정치가 투명해지고 내구 기간이 지나게 되면서 간혹 누려왔던 음지권력이 들추어지기 마련이다. 시민단체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발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특임검사제가 실시될 예정이 그 예다. 정권 초기에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권력의 실세들은 세월이 지나면 낱낱이 밝혀지는 그러한 세상이다.

한때 구름이 잔뜩 끼었던 권력의 하늘을 밝고 청명하게 만들어 온 것은 정의 집단의 노력과 희생이었다. 사실 그 반열에 정치 집단 중에서도 야당의 몫이 필수였건마는 그들은 국민의 마음을 잃은 지가 오래됐다. 국민이 원하는 정치권의 쇄신·변화 요구에 못들은 체했고, 정치권력이 마치 자신과 자신의 정당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특권을 유지한 채로 행세했다. 국민이 정치권 내에서 돌아가는 잘못된 일들을 거울처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민의 들추어내는 그 결과가 여론조사기관의 대통령 직무수행평가와 정당지지도 성적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무수행평가에서 아직 기대치 이하로 맴돌고 있고, 정당지지도는 겉돌고 있다. 정치권의 잘못됨에 대해서는 바로 질책이 터져 나온다. 한 여론전문기관이 42주차 여론조사에서 정당지지도를 보면 새누리당이 43%, 민주통합당이 20%, 통합진보당이 2%, 진보정의당이 1%이고,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파가 33%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결과를 두고 새누리당이 좋아할 게 없다. 그것은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워낙 못해서 얻는 반사적 이익일 수도 있다. 국회의석 과반수를 넘는 여당이지만 존재감은 보여지지 않는다. 이왕 여론조사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덧붙여보자. 아직 존재하지 않은 안철수 신당을 가상하여 함께 조사한 최근의 국민여론조사에 의하면, 새누리당 37%에 이어 신당이 23%를 차지하여, 민주통합당 11%보다 배나 높은 지지를 나타낸다. 이 현상은 현재의 여야 관계보다 중도세력의 새로운 정당 출현을 기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정치권과 정부는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하는 지지도 결과에 나타난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겸허히 받아들여 국정이나 정치권에 관한 지적들을 즉시 개선해나가야 한다. 세상엔 독불장군은 없다. 정치가 더욱 그렇다. 설령 정치를 잘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민생의 바다에서 또 다른 파도를 만났을 때 국민 생각과 다르게 방향타가 결정된다면 이내 민심은 돌아설 수 있다. 그래서 정치를 두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많은 위정자들은 국민을 위하네떠들어댔지만, 우리 정치사에서 국민은 항상 피치자(被治者)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국민이 주인인 시대가 됐고, 현실 정치가 국민의 눈높이에서 자리 잡지 못하면 무용지물로 남는다. 국민에게 불신을 받고, 불만의 대상이 되는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은 국민 앞에서 이미 약속한 의원특권 내려놓기 등 정치쇄신의 공약들을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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