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사태가 일단락된 가운데 제2의 용산참사를 우려하며 긴장이 고조되던 지난달 30일, 노조원 가족 10명은 정진석 추기경을 찾았다. 이들의 다급한 심경을 전할 곳은 명동 서울대교구청 주교관이었다.

지난 5일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공동대표의장 엄신형 목사·이하 종지협) 지도자들이 아침 7시부터 쌍용차 사태와 관련, 강경진압 반대와 정부의 중재 노력을 촉구하기 위해 긴급 회동을 가졌다. 하지만 이들은 뜻을 모으지 못했다.

관계자에 의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기자회견을 1시간 여 앞두고 보수성향인 한기총의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려던 긴급기자회견은 기약 없이 연기됐고, 이미 쌍용차 사태는 노사 간 극적 타협이라는 결과물을 얻고 한숨을 돌린 상태다.

이번 일은 노사 간 갈등과 문제로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최대 현안이었다. 타협이 이뤄지기까지 현장에 있던 이들은 어느 쪽이든 지옥을 경험해야 했고, 그들은 한 아이의 아빠였고, 가장이었으며, 우리의 이웃이었다. 그들 스스로 종교지도자를 찾아갔던 것은 당시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이번 일에 ‘종교계가 힘을 합해 이 사회와 국민의 심성을 계도해야 한다’던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향해 ‘사회적 현안을 외면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종지협의 창립취지를 보면 ‘우리 사회의 생명경시풍조, 물질만능사상, 도덕성상실 및 계층간, 세대간, 종교간의 갈등에 대해 종교계가 이합해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해 나감으로써…’ 뒤는 더 들어볼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미 앞서 말한 다짐도 뜻을 모으지 못했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조심스러운 법이다. 그럼에도 갈 곳을 잃고 절박한 심정을 지닌 누군가는 이처럼 민감한 사안일 때 존재한다. 또 다른 갈등으로 절박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는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해줄 종교지도자를 찾아갈 것이다.

지금 종지협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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