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주필)

 
우리 국민들은 요즘 평양발 뉴스의 홍수 속에 산다. 방송 시각을 알리는 시보가 ‘땡’ 하면 김정은이 지배하고 있는 평양발 뉴스가 나온다. 전두환 대통령의 5공 때 ‘땡’ 하면 헤드 뉴스(Head news)가 ‘전두환 대통령은… 어쩌고저쩌고’였다. 그것은 고착된 패턴이었는데 그것을 ‘땡 전(全) 뉴스’라 비아냥거렸다. 그런 기억이 생생하다.

북한의 대남(對南) 협박 공갈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그 협박 공갈이 이어지면서 꽃 피고 새 우는 상춘(賞春) 계절임에도 요즘 시절이 ‘하! 수상’해졌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땡 전 뉴스’가 아니라 김정은 권부가 쏟아내는 평양발 ‘땡 김(金) 뉴스’가 우리의 귀를 때린다. 그렇게 시작되는 평양발 뉴스가 우리 언론 매체들의 화면과 지면을 도배질한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무섭게 짖어대는 쓰레기 같은, 저질 평양발 뉴스의 홍수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천혜의 우리 땅과 하늘, 바다가 온전한 것은 다행이지만 우리의 매체들은 흡사 북에 점령당해버린 것과 같다. 매체가 평양발 관제 뉴스에 점령당했다는 것, 점령당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 자유언론 시청자와 독자들의 판별력을 믿고 존중하더라도 그 역기능을 가벼이 볼 일만은 아니다.

북의 매체들은 그들 체제의 충실한 대변자들이며 그 선봉이다. 그들은 그들 체제의 비판자이거나 그들 권력의 감시자는 털끝만큼도 될 수가 없다. 그들이 험악하게 뿜어내는 보도 내용은 그들의 의도대로 우리를 크게 뒤흔들지는 못할지라도 독이 됐으면 됐지 절대로 약은 될 수가 없다. 자유언론의 사명은 시청자나 독자가 갖는 궁금증과 의문, 뉴스와 정보에 대한 욕구와 갈증을 풀어주어 개인 및 사회적 판단과 행동의 주체로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데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보도 내용은 선전 선동적, 공작적인 엉터리없는 논리와 도그마(Dogma)에 사람들을 가두고 구속하려한다. 북의 주민들처럼 그것에 이미 길들여지고 세뇌된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것이지만 우리처럼 자유언론의 수혜자들에게는 당장 거부감을 안겨주게 되며 요즘의 ‘하! 수상’한 시절에 우리는 그 점을 절감한다.

모르긴 몰라도 북에서 김정은만은 일상 그의 방에 텔레비전을 여러 대 설치해놓고 우리의 주요 TV들을 동시에 시청할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CNN, 영국의 BBC, 일본의 NHK는 안 보겠는가. 어떤 경로로든 우리의 신문들도 결코 늦지 않게 그에게 당도해 그가 갇혀있는 폐쇄 울타리 밖의 팔딱 팔딱 뛰는 소식들과 얘기들을 접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고 믿어도 될 것이다. 북의 주민들은 당이 철저히 통제하는 관영 매체들이 제공하는 원 웨이(One way)의 일방통행 관제 뉴스만을 접하고 세뇌된 사람들이다. 물론 우리의 노래와 드라마를 비롯한 바깥세상의 멋진 개방 선진 문물 자산들이 바람구멍 같은 밀반입 통로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정도로 북 주민들의 세뇌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아마 김정은은 북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넓은 세상 물정을 가장 많이 아는 척해도 될 만한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나이가 든 북의 번데기 같은 군부 엘리트들과 각 부문의 전문가들 앞에서 때깔 좋고 팽팽한 홍안(紅顔)임에도, 모르는 것 없는 것처럼 그렇게 주름을 잡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그는 어렸을 적, 스위스에 유학을 갔던 사람이다. 그런 그였기에 권력 세습 초기에 모란봉 악단 미녀들에게 짧은 서구 의상을 입혀 그들의 ‘철천지원수’라던 ‘미(美)제국주의’ 나라의 노래와 춤을 추게 했을 때, 잠시 우리를 착각에 빠뜨렸다. 하지만 그가 권력을 세습하고도 북은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그는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인 김일성 김정일보다 한술 더 뜨거나 막상막하다. 주민에 대한 폭압이나 대외 호전성과 도발적 자세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짐작컨대 김정은은 지금 한창 우리의 TV와 신문들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 것 같다. 우리 국가 원수의 북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뉴스마저 뒷전으로 밀릴 정도로 그의 일거일동과 협박 공갈이 우리 언론에 팍팍 먹히어 도배질되고 있으니 우리 언론 매체들을 손바닥에 넣은 듯 흐뭇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 언론들은 부지불식간에 북에 이용당하고 있으며 저들은 그런 우리 언론들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 언론들은 북의 대남 메시지인 공갈 협박의 내용에 대해 철저한 검증과 가치 판단, 확인 등의 절차 없이 그들이 내뱉는 대로 마구잡이로 실어 그저 충실한 전달자(Transmitter) 노릇을 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 형편이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한 사정은 알지만 내용의 가치에 상관없이 ‘땡 전 뉴스’와 같은 ‘땡 김 뉴스’로 처리해 우리를 겁주려는 저들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국민들의 일상을 뒤숭숭하게 한다. 때로는 저들의 그런 사악한 의도가 우리 언론에 의해 증폭되기도 한다.

어떻든 그것에 반해 우리 국가 원수를 비롯한 우리 측의 단호하고도 준엄한 메시지와 건강한 충고를 전달해야 할 때는 보도의 원칙에도 맞는 공정하고 균형 있는 전달자가 돼주지 못한다는 역설적인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생각과 뜻만 있다면 얼마든지 뉴스 취재와 확인, 검증이 가능한데도 그럴 때는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기 일쑤다. 북의 도발과 협박에 대한 인내 끝의 엄중한 답변인 우리 국가 원수의 메시지가, 뻔한 평양발 뉴스에 밀리는 현실이 그런 느낌을 절실하게 해준 실례(實例)다.

그렇다고 ‘땡 전 뉴스’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은 전시와 다를 것이 없는 비상시국이다. 이런 때는 언론도 국적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주어야 옳다. 언론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천부적인 권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바탕으로 국익과 국민의 행복, 자유 민주 공동체를 위해 존재해야 존중받고 사랑 받을 수 있으며, 시청자이고 독자인 국민들로부터 언론이 존재해야 하는 가치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언론이 진정으로 건강한 사명을 다한다면 북이 무슨 협박 공갈과 도발을 하든지 우리는 의연하게 저들을 이길 수 있다. 김정은이 우리 TV와 신문을 보면서 눈을 부릅뜨고 찾는 기사는 틀림없이 저들의 협박에 겁을 먹고 우리 땅에서 외국인은 떠나며 우리가 분열되어 우왕좌왕하는 모습일 것이다. 개성공단까지 문을 닫았지만 우리 언론에서 그 같은 기사를 많이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를 다소는 실망시키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국민들이 의연한 것은 저들이 뭐라고 하든, 혹여 무슨 짓을 하든 우리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애국적 신념에 기초한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상황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 같은 국민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쓰레기 같은 평양발 뉴스로 도배질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를 빨리 받아들이도록 김정은을 깨우치고 설득하는 충실한 대한민국 메시지의 전달자가 되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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