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우리 부족 사람들에게서는 접하기 드문 이름입니다. 왜 무함마드라고 지으셨는지요.”

“하하. 그렇지요. 우리 쿠라이시족은 잘 쓰지 않는 이름이지요. 이 이름은 말입니다. 이름 뜻 그대로 이생과 천국에서 칭송을 받는 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습니다.”

조부 압둘 뭇딸립은 아들 압둘라가 일찍 세상을 떠나 과부가 된 며느리 아미나에게서 손주를 얻었다. 서기 570년 4월 22일이다. 뭇딸립은 유복자인 손주를 안고 카바 신전에 가서 ‘무함마드’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탄생한 것.

당시 무함마드 일가는 아랍 부족인 쿠라이시족이었는데, 이 부족은 카바 신전의 관리를 맡고 있었던 명문 부족이었다. 부족 사람들은 무함마드의 이름을 듣고는 뭇딸립에게 나와 이름을 이렇게 지은 연유를 묻곤 했다.

부족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뭇딸립은 이름의 뜻대로 무함마드의 앞날에 축복이 내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이름의 뜻을 설명해주곤 했다.

명문 부족이라고는 하지만 무함마드의 가정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다. 교육을 위해 무함마드를 유모에게 맡겼지만 넉넉지 못한 무함마드의 가정에서는 유모의 보수를 넉넉하게 줄 수 없었다. 이에 유모는 무함마드를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고 만다.

이 시대 아라비아 귀족들은 좁은 메카를 떠나 넓은 곳을 보고 느끼게 하려고 유아를 유목민 유모에 맡겨 기르는 풍습이 있었다. 사막에서 자연을 보고 배운 아이는 8세나 9세가 되어야 부모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무함마드는 일찍 가정으로 돌아오게 됐고, 생모는 그가 6세가 되던 해에 부친의 무덤을 알려주기 위해 무함마드를 데리고 친정인 메디나로 향했다.

“내 아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유모 아래서 사막의 광활한 자연을 배울 수 없는 게 안타깝구나. 또 아버지의 얼굴도 못 보고 자란 것도 속상하구나. 그래 친정에 가야겠어. 친정에 가는 길에 사막을 경험하게 하고 단 한 번도 못 본 아버지이지만 무덤이라도 보게 해야 하겠어.”

이렇게 무함마드와 그의 어머니는 메카에서 메디나까지 끝이 없는 것처럼 펼쳐진 사막 여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독으로 병을 얻게 된 생모는 고향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었다.

무함마드는 어머니마저 잃고 할아버지의 손에 맡겨지게 됐다. 하지만 할아버지 또한 2년 후인 8세 때에 세상을 떠나게 됨에 따라 가문의 새로운 가장이 된 숙부 아부 딸립에 맡겨져 양육됐다. 그는 양을 치며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학문을 배울 수 없었다. 양을 치며 자연의 이치를 탐구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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