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린 예상매출 믿고 오픈, 5년 계약에 결국 빚더미

 
[천지일보=김지연 기자] “내가 편의점 운영하니까 이 동네 사람들은 내가 부자인줄 아는데… 지난달 내 손에 쥔 돈이 10만 원이예요. 누가 이 사정을 알겠어요. 식당에서 한 달 일하면 아무리 못해도 100만 원은 버는데.”

서울 용산구에서 편의점 CU(씨유)를 운영하는 박 씨는 기자에게 “내 노동의 대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시간 외 하루 8시간씩 매장을 지키며 한 달 꼬박 일하는데 손에 돈 한 푼 남지 않는 상황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 2년간 편의점을 운영했지만 박 씨에게는 매달 조금씩 쌓인 1800만 원의 빚이 생겼다.

◆“가맹계약, 처음부터 잘못됐다”
그동안 개인의 운영 미숙으로만 치부되는 듯했던 편의점 가맹점 문제가 끝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일 민주통합당 민병두 의원실이 주최한 피해자 증언 자리에 모인 가맹점주들은 눈물을 훔치며 본사의 횡포를 성토했다. 주요 사례는 근접 출점, 매출 허위·과장, 점주 단체활동 방해 등이었다.

점주들은 주로 본사가 파견한 RFC(가맹점개발자)의 설명만 믿고 ‘어느 정도의 생활비는 벌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 점이 오산이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RFC의 설명이 실제와 다르다는 데 있다. 본사에서 철저한 시장조사를 벌였다고 하지만 실제 매장을 오픈하면 1일 매출이 예상치의 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입지가 좋고 유동인구가 많다면 매출이 보장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본사의 말만 믿었다가는 ‘5년 계약’이라는 빠져나오기 힘든 덫에 걸리게 된다.

기자가 만난 점주들은 RFC가 보여준 예상 매출 내역이 ‘함정’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월세, 전기요금, 폐기지원비 등을 내고 나면 아르바이트생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르바이트생에 최저임금도 못 줘
“최저임금을 왜 안 챙겨주고 싶나요, 적자가 나는 상황이니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죠.”

점주들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최저임금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은 아르바이트생을 쓸 수밖에 없다. 아니면 가족이라도 동원해야 한다.

올해 최저임금은 4860원. 그러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급은 보통 낮 시간 4200~4300원(야간 5000~5200원) 정도다.아르바이트생을 구할 때는 점포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고 시급을 제시한다. 시급이 낮다보니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야간시간 매출은 아르바이트비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24시간 운영을 탄력적으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한 점주는 “야간시간대 매출이 0~3만 원 사이다. 실제 순이익은 2000원 정도. 하지만 인건비는 5만 원이 넘게 나간다”고 설명했다.

제발 폐점만 할 수 있다면…

본사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으니 할 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점주들의 사정은 다르다. 예상치 못한 병을 얻거나 사고를 당한 경우, 하루하루 매장을 운영하면서 늘어만 가는 빚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 등 폐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5년을 채우지 못한 경우 위약금으로 10개월 치 매출액을 물어내야 한다. 보통 몇 천만 원에 이르는 큰돈이다. 5년을 채우지 못한 대가로 인테리어비의 일부도 부담해야 한다. 계약 당시는 그저 ‘무상, 100% 지원’으로만 들었던 인테리어비까지 물어내야 한다는 사실은 점주들에게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의 부담이 된다. 이에 대해 씨유 편의점 본사는 “대여 개념이라서 그렇다. 건물을 사용하고 나갈 때는 원상복구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5년 이전에 폐점할 경우 이 같은 비용을 일부 분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쉽게 위약금을 낼 수 없는 점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대기업이라고 RFC의 설명 믿은 게 잘못”
“계약서를 잘 안 읽은 건 잘못인데,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올해 1월 서울 목동에 세븐일레븐을 오픈한 정 씨의 말이다. 정 씨는 실제 하루 매출이 RFC의 말과 달리 4분의 1에도 못 미치자 개점 25일 만에 폐점을 결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본사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계약 2주 전에 정보공개를 받지 못했음에도 본사가 차후에 날짜를 조작, 2주 전에 정보공개를 한 것처럼 꾸몄다.

본사는 위약금조로 제시한 1600여만 원에서 50%를 깎아주며 700여만 원만 내면 폐점을 시켜준다고 했다. 하지만 정 씨는 그 돈을 낼 생각이 없다.

‘최저보장금 500만 원’도 문제다. 편의점 본사는 계약 당시 “매출이 잘 안나오면 500만 원을 지원하니 아무 걱정없다”고 창업희망자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정 씨의 경우 하루 매출이 45만 원 이상인 경우만 최저보장금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계약 당시 전혀 듣지 못했다. 현재 일 매출이 20여만 원인 정 씨는 보장금 지원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정 씨는 “본사는 절대 손해 안봅니다”라고 강조했다. “계약할 때 보증보험 집 담보를 걸었어요. 지금도 묶여있죠.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중산층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게 편의점 본사입니다.”

한편, 최근 민병두 의원은 5년(2008~2012년)간의 편의점 분쟁 현황을 분석한 결과 세븐일레븐이 ‘최다’를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2위는 CU(씨유)였으며 씨유 본사는 이를 의식한 듯 가맹희망자를 대상으로 계약 시 사전 설명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지난 2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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