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주 디딤커뮤니케이션 실장

처음 만난 순간! 생명을 내 놓은 수 있는 영원한 약속의 사랑

▲ 이태주 디딤커뮤니케이션 실장
2010년 1월 19일 오후 9시 28일 평범하지만 내 인생의 빛나는 보석 같은 반전이 있었던 날. 바로 내가 37이란 늦은 나이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날이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날은 산고의 고통과 산부인과 병원의 부산함으로 한 생명의 엄마가 된다는 기쁨과 환희를 느낄 틈이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비로소 내 딸과의 감격적인 첫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첫 젓 물림’ 아직 핏기가 가시지 않는 조그만 생명, 나를 닮았는지 아빠를 닮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아이가 내게 와서 젓을 처음 물던 그 감격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때 그 아이와 나의 첫 만남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각오를 다짐했다. ‘이 귀엽고 작고 소중한 아이가 위험에 직면해서 내가 생명을 내 놓을 일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이 아이를 지키고 내 생명을 내놓으리라.’

이 결심과 함께 떠오르는 깊은 생각이 있었다. ‘내 어머니도 나를 이처럼 크게 사랑하셨구나, 어머니는 어떻게 우리 4남매를 가난한 형편에 혼자서 키우셨을까?’

나는 내 자식을 낳고 엄마가 되면서 훌륭한 내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 비로소 마음으로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다섯 살 때부터 빚을 크게 지고 처자식을 버리고 도망가 소식을 끊은 아빠를 뒤로 하고 혈혈단신으로 1980년 그 추운 겨울에 서울로 상경해 포장마차, 함바집 등을 하면서 1년 365일 쉬지 않고 하루 5시간 밖에 자지 않고, 우리 4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결혼시키신 분이다.

우리 시절에 어머님들은 자식을 위해서 고생을 아끼시지 않으신 분들이 많으시지만, 나는 내 어머니가 한평생 고생하신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도 일어나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다했다.

내가 자식을 낳고 키워보니 여자가 자식을 혼자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슴으로 깨닫게 된다. 자식들이 아플 때, 자식들이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어머니는 상의할 사람도 도움 받을 사람도 없고 얼마나 혼자서 외롭고 많은 고민을 하고 힘들어 하셨을까.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어머니는 그 고생스러운 세월 속에서도 아빠나 타인에 대한 원망,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나 후회가 전혀 없으신 분이었다.

항상 긍정적이면서 사랑이 넘치시는, 자식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몸소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제대로 사는 건지 행동으로 크게 보여주신 분, 주변사람들에게 베푸시고, 늘 유쾌하시며, 자식 문제라면 생명을 내놓고도 남을 내 어머니. 나는 항상 이런 내 어머니를 위해서 살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참으로 많이 하면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러나 차츰 세월의 때가 묻어가고 사회생활의 수많은 잡음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결심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자식과의 만남을 통해서 잃어버렸던 소중한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다시 ‘내 어머니를 위해서 살고 싶다.’

어머니의 고생과 노력이 헛되지 않고,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어머니가 삶을 통해서 보여주셨던 그 훌륭한 정신과 행함으로 보여주었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고 지금도 내 곁에서 열정적이고 멋진 삶을 보여주시는 어머니를 위해서….

나는 다시 한 번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서 묵묵히 우직하게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내 아이도 나처럼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서 삶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내 인생의 뿌리며, 나의 삶에 든든한 등대가 늘 되어주시는 사랑하는 내 어머니 이형숙 여사에게 한 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과 어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두 자녀를 데리고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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