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새 정부 인사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서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 앞으로 인사 검증 체계를 강화하여서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부의 고위직 인사 운용을 위해 설치한 청와대 인사위원회 위원장인 허태열 비서실장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비서실장 명의로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를 하였는바,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즉각 허 실장의 사과문 발표를 비판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설 것을 촉구했다.

민주통합당은 논평을 통해 “사과의 주체와 형식도 잘못됐고, 알맹이도 없는 하나마나한 사과”라며 쏘아붙였다. 특히 야당 일각에서는 인사 부실 검증에 대해 인사라인의 문책 해임이 국민의 마음을 달래는데도, 비서실장 명의의 대국민사과를 대변인이 대독 발표한 것은 국민을 졸(卒)로 보는 나쁜 사과라 지적했다. 정부 인사 내정자가 줄줄이 낙마한 인사 사고는 국민에게 큰 반향(反響)을 일으켜 이로 인해 박 대통령 지지도가 41%로 뚝 떨어졌다.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했는데 장관급인 인사위원장의 사과마저 대독했다는 점에서 여론이 만만하지가 않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국민사과를 한 날 오후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고위 당·정·청회의가 열렸는데, 새누리당 지도부까지 나서서 새 정부의 인사 실패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할 분위기이자 청와대가 미리 대비했다는 말도 나온다. 어쨌든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관련하여 정부조직법 개정 과정에서 두 달 가까이 지체되면서 정부 출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에 인사 부실 검증마저 겹쳐 잔뜩 기대했던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러한 우여곡절을 겪고 시작한 박근혜 정부가 여당과 정부, 청와대가 국정운영 과정에서 한 박자를 내고 국민 지지를 위한 해법 모색 등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위직들이 함께 모인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국민의 선택을 받은 이후 그동안 대통령직인수위 등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새 정부가 산뜻한 출범을 예상했지만 ‘정부조직법 지연 처리’와 ‘고위직 후보자 낙마’라는 복병을 만나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계속 하락하는 추세였다. 더 이상 당·정·청의 각개 플레이가 곤란하다는 위기감을 함께 공유했던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초기에는 새 정부가 운영해나갈 국정철학 및 국정과제에 관해 토론했다. 현안이 있거나 난관(難關)에 부딪힐 때마다 여당과 정부의 고위층이 합동으로 만나거나, 정부 내에서 각 부처 장차관들이 모여 정책 세미나를 열고 대두된 현안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 모임에서 공동 이해를 통해 동질감 형성과 정책 결정에 같은 목소리를 내는 그 자체로 국민에게 어필될 수 있는 계기다. 이날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당·정·청을 가로막는 칸막이를 허물어야 한다고 했고, 황우여 대표 또한 ‘당·정·청 연대 책임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국민 입장에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한 달이 지나간 기간 동안 집권 여당과 정부가 과연 제대로 국민의 기대에 맞게 일을 해 왔느냐고 묻는다면 부정적인 대답이 많을 것이라고 되물으면서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당·정·청이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임을 내세웠다. 물론 맞는 말이다. 정부·여당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는 관계이고, 정권을 맡은 이상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함은 너무나 당연함이 아닌가.

새 정부는 대선 공약 사항을 국가정책으로 결정하고 국민편익과 국가부강을 위해 힘써야 한다. 여당은 국정 책임의 동반자로서 정부 결정에 대해 입법 활동이나 정책적 보완을 실현시켜나가야 하고, 청와대는 대통령이 내각을 잘 이끌 수 있도록 참모 기능을 철저히 해야 함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인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취임 전후 과정에서 한 달 동안 여당이 보여준 활동상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내각조차 구성하지도 못하는 등 식물 정부를 만드는 데 일조하였으며, 청와대도 인사 검증 부실로 스스로 화(禍)를 키웠던 것은 사실이다.

정당민주주의에서 정당의 할 일은 다대(多大)하다. 특히 여당은 야당과 잘 협상하면서 국가이익이나 국민의 편익을 위해 꾸준하게 좋은 정책을 제도화하는 입법 활동을 해야 한다.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고 있는 현실일수록 자신들의 특혜를 내려놓고 국민이 요구하고 꾸짖는 일부터 차근차근히 개혁해 나가야 한다. 지난 대선 때 정당 후보자들은 새롭게 변신하는 정치를 만들겠노라고 얼마나 많은 쇄신 내용을 호언장담했던가. 한국사회에서 ‘국민은 일류, 기업은 이류, 정치는 삼류’라는 말은 어제오늘에 나온 것이 아니니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다.

아직도 정치권은 국민이익보다는 자신의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다. 그 대표적 예가 기초자치단체의 장과 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인데,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꿍꿍이로 전국 기초단체장과 의원 협의체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를 무수히 주장해왔지만 철저히 외면해왔다. 이제는 구태정치를 버리고 국민에게 희망과 신뢰를 주고 국가 미래에 확신을 주도록 새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국회의원의 특권 내지 기득권 내려놓기다. 그런 다음에 대다수 국민이 불편한 점이나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우리 사회의 안개를 모두 걷어내는 ‘착한정치’의 실현이다. 그것이야말로 정당과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정치인들이 책임지는 시대적 의무인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