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가계대출 연체율 6년여 만에 최고

▲ 출범식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신제윤 금융위원장, 박병원 국민행복기금 이사장을 비롯해 서민금융 기관장과 주요 금융 협회장 등이 표지석 제막을 하고 있다.(사진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일녀 기자] “국민행복기금이 빚에 허덕이는 서민들에게 ‘행복으로 가는 희망의 사다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

정홍원 국무총리는 29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본사에서 열린 국민행복기금 출범식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국민행복기금이 이날 공식 출범했다. 국민행복기금은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1억 원 이하의 채무를 6개월 이상 연체한 채무자의 빚을 최대 50% 감면해주고, 나머지는 10년에 걸쳐 나눠 갚게 해 경제적 자활을 돕는 채무조정사업이다.

그러나 출범 전부터 제기됐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대출자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은 금융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가계대출 연체율이 6년 4개월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권 가계대출 연체율은 한 달 전보다 0.05%p 오른 1.04%를 기록했다. 이는 2006년 10월(1.07%)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가계대출 잔액 495조 5000억 원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주택담보대출(312조 원)은 연체율이 0.02%p 오른 0.96%로 1%에 육박했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2006년 8월 1.03%를 기록한 이후 1%를 넘은 적이 없다. 가계신용대출의 연체율도 한 달 전보다 0.13%p 상승한 1.21%를 기록했다. 국민행복기금이 신용대출 채무불이행자(1억 원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듯 최근 가계대출 연체율 증가는 국민행복기금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졌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이는 지난 2003년 정부가 채권을 탕감해주겠다고 발표하면서 연체율이 급등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당시 자산관리공사는 연체자의 원금 30%를 깎아주고 상환기간을 늘려줬다. 그러나 이후 카드사와 채권추심업체는 한동안 채권을 회수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또 성실 상환자와 앞으로 발생할 채무불이행자와의 형평성 논란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현재 금융기관에서 채무조정 절차를 밟고 있거나 빚을 꾸준히 갚은 중인 경우에는 채무조정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국민행복기금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에 대해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9일 “형평성 논란은 자활의지가 있는데도 채무의 늪에 빠진 분들에 대한 문제”라며 “이는 사회 공동체의 과제이며 더불어가는 사회를 만든다는 차원의 문제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어 채무조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범위가 예상보다 좁다는 지적과 관련, 기금의 수혜대상 확대 여부에 대해서는 “채무조정 대상자의 추정치는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빚 탕감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높일 수 있고, 결국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채무 감면 대상자와 시기에 대해 시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채무감면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남은 빚을 성실히 갚아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저소득층 가구의 금융대출 잔액은 평균 7228만 원으로 연간 가처분소득 873만 원의 827%에 달한다. 빚을 갚는데 8년이 걸리는 셈이다. 때문에 채무감면은 최저임금 현실화 등 소득향상 대책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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