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미(인천 부평구 산곡동)

자식들 꼼꼼히 챙기는 어머니는 안식처
71세 노구 불구 98세 친할머니 모셔

▲ 허선미(인천 부평구 산곡동)
저는 인천 산곡동에 살고 있는 두 딸아이의 엄마입니다. 저에게도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계시지요.

저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라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났고 중학교까지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저는 2남 5녀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적지 않은 자식을 키우면서 어머니는 항상 조용한 목소리와 화가 나셔도 일단 참으시는 모습과 그 시절 어머니들이 다 그러셨지만 저희 어머니께서도 웬만한 요리는 모두 손수 해주셨고 그 옆에서 보고 배워 저 또한 두 딸아이에게 언제나 손수 요리를 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언제나 온유하며 천상 여자임이 느껴지는 분이셨습니다. 반면에 저의 아버지는 목소리도 우렁차시고 성격도 강하시며 별 몇 개 단 장군님처럼 큰 소리로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벼락같은 소리를 항상 들으며 지냈고 아버지의 기침소리만 들려도 간이 콩알만 해지는 초긴장속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 속에 오로지 안식처는 나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느 덧 그런 어머니의 연세가 칠순을 넘기시고 올해 71세를 맞이하셨습니다. 이제는 자식들의 효도와 손주들의 자랑을 보시며 편안히 사셔야 할 나의 어머니시지만, 어머니께서는 거동이 불편하신 올해 98세를 맞이하신 친할머니를 모시고 계신답니다.

아직도 3끼를 제 시간에 어머니보다 많은 양의 식사를 잡수시는 할머니의 끼니를 챙기시기 위해 꼼짝을 못하신답니다.

어머니께서도 건강이 좋지 않으시고 2년 전 척추 수술까지 받으셨기에 저희 형제들은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완강하신 아버지를 설득하여 친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실 것을 권유 드렸으나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시고 잠 못 주무실 아버지를 배려하시어 힘들지만 당신이 모실 것을 자처 하셨답니다. 결혼 후 시부모님과 3년도 못 살고 따로 살겠다고 나온 저로서는 저의 어머니가 너무 위대 하시고 존경스럽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는 것은 고사하고 전화도 자주 안하는 이 못난 딸. 아직도 쌀부터 김치 양념까지 친정에서 공급받고 있으며 명절 때면 적지 않은 자식들을 꼼꼼히 챙기시느라 바쁘신 나의 어머니입니다. 나의 어머니께서 안 계시는 친정집은 상상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아직도 저에겐 안식처랍니다.

바이올린 켜는 음악 소리를 들으시며 ‘나는 저 소리가 너무 좋더라’ 하시며 가슴을 쓰러 내리시는 나의 어머니를 저는 박 고상여사라고 부르지요. 나의 박 고상여사님께서 정말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박 고상여사님께 이 글을 바치겠습니다. 하나님께 나의 어머니 딸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당신의 자식 사랑하는 만큼의 깊이는 못 미치지만 사랑합니다. 더 사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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