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6~9)”

본문을 통해 이천 년 전 두 가지의 빛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니 바로 세례요한과 예수다. 그런데 진짜 참 빛은 예수이며 세례요한 본인은 다만 그 참 빛을 증거하러 왔을 뿐이라고 증거하며, 또 증거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참 빛 즉,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함이라 고백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예수와 세례요한의 관계, 나아가 각자 빛의 사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두 사람은 빛은 빛이되 예수는 세례요한의 증거대로 ‘참 빛’이며, 또 친히 “내가 세상의 빛이로라(요 9:5)”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요 5:35)”라고 세례요한의 정체를 밝히고 있으니, 등불 빛은 어떤 일정 기간 필요에 의해 들어 쓰는 빛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을 달리 하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명이 다하므로 일시 켰던 그 등불은 다시 꺼질 수밖에 없음을 귀 있는 자는 깨달을 수 있다.

다시 풀어 보면 빛이신 예수께서 유대 땅에 오시기 전 유대는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하나님과 소통이 끊긴 그야말로 칠흑 같은 영적 밤이었다. 이 같은 어두운 밤에 신랑 되신 예수를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등불 빛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이치로도 빛이 오면 어둠을 밝히기 위해 일시 켰던 등불은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고 예루살렘 성전을 주관했으나, 결국 세상과 하나 되어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는 당시 종교지도자들 즉, 사단이 주관하는 목자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빼앗기고 말았으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요 2:14)”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마 23:2)”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와 같은 내용들이 그 증거다.

결국 이천 년 전 예수 초림의 사역, 즉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는 일성(一聲)도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마 4:12)”라는 말씀처럼, 세례요한의 사명이 다함으로 비로소 예수의 사역이 시작됐음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처럼 초림의 역사를 통해 본 세례요한의 사명은 바로 여기까지로서 길 예비사자의 사명이요, ‘청사초롱 불 밝혀라’ 하듯이 신랑 되신 예수를 맞이하는 등불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그래서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 16:16)”는 말씀이 이 모두를 정확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물론 이 또한 예언 없이 된 일이 아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 3:1)”

이 같은 초림의 역사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친히 설계하시고, 구약을 통해 알려 오신 대로 이루어졌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재림의 역사 즉, 신약인 요한계시록 또한 이 같은 하나님의 계획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깨닫고 확인해 보는 신사적인 신앙인을 하나님은 찾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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