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듯한 한반도가 다시 평온으로 회복되고 있다. 북한의 ‘말폭탄’ 공격도 잠잠해지고 과연 앞으로 통일시계는 어떻게 돌아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또 다시 강경한 군인들에 둘러싸여 비장한 표정으로 그 뚱뚱한 몸을 이끌고 최전방을 휘젓던 김정은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분명 ‘선군정치’로의 복귀는 아닌 듯싶지만 ‘혼돈정치’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북한 온건파의 대부인 노동당 행정부장 장성택의 모습이 안 보이는 가운데 강경파 중의 강경파인 김격식 인민무력부장과 정찰총국장 김영철이 줄곧 김정은의 곁을 배회하고 있으니 그 어린 지도자가 무슨 배짱으로 정상국가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정상정치는 정상국가를 낳고 혼돈정치는 불량국가를 낳기 마련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그 목줄을 조여오고 있는데 김정은은 그 절박함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먼저 혼돈정치 시대 북한의 온건파와 강경파를 분류해 보자. 우선 온건파는 노동당 행정부장 장성택과 노동당 정치국 위원 김경희, 그리고 총리 최영림과 부총리 강석주 등이다. 사실상 국가원수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이쪽 저쪽도 아닌 그냥 로보트다.

모두 당과 내각, 외교분야에서 잔뼈가 굵어온 사람들로 합리성과 원칙을 중시한다. 최근 장성책의 2선 후퇴가 중국과의 모종의 거래가 들통나고 그 바람에 군부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는 설이 있는데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김경희는 힘은 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파워를 발휘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최영림과 강석주도 식견이 높지만 워낙 밀어붙이는 군인들을 감당해낼 여력은 없는 빈약한 엘리트들이다.

반면 강경파를 살펴보면 최용해 총정치국장과 현영철 총참모장, 김격식 무력부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박도춘 군수담당 비서 등이다. 이들은 김정은 3대 세습 초기 당시 노동당으로 이동하는 권력을 지켜보며 마음 졸이던 장본인들이다. 그래서 연평도 포격도 하고 천안함도 폭침시키면서 김정은의 연약한 멘털리티에 긴장의 DNA를 심어주었다.

제 아무리 애써도 일어서지 않는 ‘계획경제’만 바라보면 김정은이 금방 일낼 것처럼 펄펄뛰는 군부대로 발길이 잦다보니 자연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다. 그는 포병학에 심취하고 금방 분위기를 쇄신하는 불뿜는 포사격의 매력에 쉽게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특히 장거리 로켓실험 성공과 3차 핵실험 성공으로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의 성과물을 척척 갖다 바치는 군인들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당분간 북한의 개혁과 개방은 물 건너 간 것 같다. 하지만 김정은의 혼돈정치는 피폐와 고갈의 절정에 선 북한 체제를 순식간에 붕괴시킬 수도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간과한다면 수구체제 역시 오래가기 어려울 것이다. 뒤로 밀려난 장성택과 건강이 극도의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김경희가 없다면 김정은의 통치력의 원천도 동시에 고갈되기 쉽다. 김일성이란 벽이 있어 김정일이 있었고, 김정일의 후광이 있어 오늘의 김정은이 있다는 것을 이 어린 지도자가 벌써 망각했는가. 다행히 김정은이 장마당경제에 대해 어느 정도 느슨한 태도를 취한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중국 등으로부터 상품유입과 외부 세계와의 교류협력이 없다면 그 장마당이 어떻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이번 사태로 국제사회는 다시 북한에 대해 레짐 첸지라는 극도의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김정은 스스로 혼돈에 빠져 갈팡질팡하고 거기에 핵무기까지 보유했다니 레짐 첸지란 말이 나올 만도 한 것 아닌가. 그 말을 다시 잠재우는 장본인은 바로 김정은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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