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주필)

 
중국의 지도부가 최근 교체됐다. 후진타오 국가 주석, 원자바오 총리의 시대는 가고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새 시대가 열렸다. 중국은 사회주의 집단지도체제의 국가이지만 중국을 끌고 가는 주 견인력은 이 두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 두 사람 중에서도 당 밑바닥에서부터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최고 지도자로 우뚝 성장한 시진핑 지도력의 견고함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중국은 지난 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에 불을 당긴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불과 30여년 만에 미국을 바짝 추격하는 세계 2번째의 경제 강대국으로 굴기(崛起)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세계사의 신화로 통하는 대한민국의 압축성장보다도 더 시간을 앞당긴 놀라운 성과다. 하지만 이 같이 초스피드로 앞만 보고 질주해도 됐던 시대는 갔다. 그것은 시진핑의 전임자 후진타오 시대까지로 끝이 났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통치를 요구한다. 굴기의 과정에서 그 성취의 높이만큼이나 긴 그림자로 따라붙은 부작용들이 그들에게는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으로 대두되었다. 국가 최고 지도자 시진핑의 성공, 나아가 중국의 향후 운명은 이 같은 도전을 넘어서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중국은 사회주의로 포장된 자본주의의 나라다. 그나마 사회주의 색채는 그들의 경제발전이 성숙해가고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돼 갈수록 엷어져간다. 중국은 더는 사회주의 이념으로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집권의 지속을 위해 아직 버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는 허울일 뿐이다. 그들은 절대 폐쇄사회인 북한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사회주의는 더는 공산당 집권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북한에서와 같은 교조적인 통치도구가 아닌 것이다.

오늘의 중국을 끌고 가는 공산당 집권의 명분과 정당성은 세계가 놀라고 그들 인민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경제발전의 성과다. 동시에 강대국으로 발돋움 하는 굴기에 의해 인민들에게 중화민족의 꿈과 자존심을 심어주는 민족주의의 발양(發揚)이다. 그들은 과거 1840년 영국이 도발한 아편전쟁으로부터 일제의 대륙침략 시기를 거쳐 1945년 미국의 원폭 리틀보이가 히로시마에 떨어져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1백 년 동안 외세로부터의 참담한 굴욕을 겪었다. 그들은 그 쓰라렸던 한(恨)을 풀고 있다. 그 과정이 중세까지 문물(文物)로써 서양을 압도했던 옛 중화민족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강대국으로의 굴기 노력이다.

그 같은 중화민족 부흥의 민족주의적인 야망은 시진핑의 국가 주석 취임일성에서 넘치고 넘쳐났다. 그는 그를 국가 주석으로 결정한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중국의 꿈, 바로 ‘중궈멍(中國夢)’의 실현을 여러 차례 되풀이해 역설함으로써 그것이 그의 시대 국가정책 시행의 핵심 목표가 될 것임을 천명했다. 그가 말하는 민족주의적인 ‘중궈멍’이란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민족을 융성하게 하며 인민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어낸다’는 것이 요지다.

그런데 ‘인민의 행복’이라는 개인주의의 냄새가 나는 용어는 사회주의 시스템의 지도자에게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계급투쟁’이나 ‘노동자 혁명’을 선동하는 전투적인 용어, 또는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에 대한 격렬한 비난이 과거의 그들에게는 익숙하고 상투적인 용어였다. 이처럼 시진핑에게서 전투적인 용어나 누구에 대한 비난 대신 세계의 지도자들이 보편적으로 쓰는 ‘인민의 행복’, 바로 ‘국민의 행복’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세계 속에서 오늘의 중국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느냐를 잘 알게 해준다. 중국은 확실히 변했다. 그동안의 개혁개방이 중국을 이렇게나 변화시켰다. 앞으로는 더 빠르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며 바로 시진핑이 그 변화를 이끌어내는 새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그는 개혁주의자다.

그렇다고 시진핑이 옛 소비에트연방의 급격한 글라스노스트(Glasnost/개혁개방)를 이끈 고르바초프(Gorvachev)와 같은 인물일 것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현찰이 넘칠 만큼 부자인 지금의 중국은 고르바초프와 같은 인물의 등장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던 국가 재정과 경제가 파탄 났던 소련과는 다르다. 따라서 경제가 발전되고 그에 따라 인민의 의식이 깨어가고 열려가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모순과 상충의 해소는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는 없어 보이나 그들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서두르는 것 같지가 않다. 분명 그들은 서두르지는 않을지라도 자본주의식의 개인적인 성취나 동태적인 경제 활력을 사회주의라는 국가 통제의 획일 정치시스템으로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갈수록 절실하게 깨달아가고 있을런지는 모른다. 아무튼 그들이 화급한 개혁 과제로 생각하는 것은 성장일변도의 정책에서 초래된 빈부격차의 해소, 정경유착과 관료들의 부패 척결이다. 리커창 총리는 ‘부패와 정부의 위신은 물과 불의 관계와 같아서 부패를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경제 강국에는 국제적인 외교 무대에서 힘이 주어진다. 뿐만 아니라 그 외교적인 힘과 세계에 뻗친 경제 이익을 실력으로 뒷받침하고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기른다. 경제 강국이 된 중국의 군사력 확장이 무서운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그 ‘위협론’을 일축하지만 과거에 당한 설움이 많아서인지 그들의 힘은 다소 위협적으로, 공격적으로 주변국들에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과의 센카쿠 분쟁, 동남아 국가들과의 남중국해 갈등은 국지적이고 전술적인 것이 아니라 중국에 대한 봉쇄를 풀지 않는 미국에 대해 국제 질서의 재편을 요구하는 중국의 도전장이다. 다시 말하면 신흥 강대국 중국에 의한 국제정치적 차원의 전략적인 큰 싸움이며 승강이다. 중국은 한편으로는 강대국으로서의 국제적 책임과 의무도 이행할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그 같은 약속의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은 중국이 혈맹으로 가까이 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중국의 굴기로 중국이 변하면 한반도의 정세도 변한다. 재균형(Rebalance) 정책으로 아시아를 중시하는 미국과의 관계도 변한다. 미국과의 질서재편은 먼저 동아시아 동남아에서 일어나고 점차 다른 지역으로 확산돼 나갈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외교 안보 측면에서 대한민국에 비상한 시국이며 엄중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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