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하나님을 경외(敬畏, Fear Reverence)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함에 대해 공경과 두려움을 갖는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이 곧 지식의 근본이라고 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을 경외 즉, 공경하고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연 뭘까.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사 14:24)”고 하신 바와 같이, 말씀하신 대로 틀림없이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한편 세상에서도 ‘콩 씨를 심으면 콩이 나고, 팥 씨를 심으면 팥이 난다’는 이치처럼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의미도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공의로우신 하나님, 이치의 하나님, 진리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 하듯이, 우리는 보이지도 만질 수도 냄새도 없는 하나님을 밑도 끝도 없이 믿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경외하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한결같이 말씀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하나님은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0~11)”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놓고 볼 때,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신앙의 모순된 점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천 년 전 초림 예수를 통해 이 땅에 복음의 씨를 뿌렸다(마 13:24~25). 물론 그 뿌린 씨는 예언 없이 뿌린 것은 아니다(렘 31:27).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시고 그 예언대로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것이다. 이천 년 전 씨를 뿌리신 예수님은 다시 추수할 때를 알리시고(마 13:30, 계 14:14~16), 그 때가 세상 끝(마 13:39)이요 마지막 때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추수 때 추수해 거둬들인 알곡들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한다고 분명히 성경(요한계시록)을 통해 약속해 놨다(계 7장, 14장).

세상에서도 농부가 밭을 힘들게 개간한 후 씨를 뿌리는 목적은 결실하기 위함일 것이요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처럼 하나님도 하늘 농부의 입장에서 4000년간 밭을 개간한 후, 그 밭에 씨를 뿌린 목적은 첫 열매인 알곡을 추수해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하고 천국백성 삼기 위함일 것이다. 이것이 이치고 진리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촌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이때가 어느 때인지, 또 자신들이 씨 뿌린 밭에 남아 있는지 아니면 추수되어 갔는지조차 모른 채 무조건 예수 믿으면 구원 받았다며 이천 년 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또 ‘성도들을 빼앗긴다’는 이유만으로 예수님을 핍박하고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듯이, 오늘날도 하나님을 보낸 자와 계시의 말씀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핍박부터 하는 것은 아마 그 유전자로 인함이라 봐진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눅 12: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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