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말 은행권 집단대출 사상 최고 수준

▲ 개인주택자금대출 창구에서 한 고객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는 장면(사진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일녀 기자]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채무자가 확산되고 있다. 이달 말 출범하는 국민행복기금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국민행복기금은 1억 원 이하 빚을 6개월 이상 연체한 다중채무자를 대상으로 원금을 50~70% 탕감해주고 나머지는 분할상환토록 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은행의 집단대출 연체율은 2.0%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집단대출이란 아파트 분양자들이 입주를 앞두고 건설사에 줘야 하는 중도금과 이주비 등을 단체로 빌리는 것을 말한다.

특히 집단대출 잔액이 19조 원인 농협은행의 연체율은 이달 중순 3.5%로 2011년 말(1.4%)보다 2.5배나 상승했다. 집단대출 잔액이 23조 원인 국민은행의 연체율도 같은 기간 2.2%에서 2.9%로 올랐다.

집단대출 연체율 상승의 주요 원인은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집값 하락이 꼽히지만 최근 새 정부의 지원 대책에 대한 기대심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게 은행권의 시각이다.

최근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도 “박근혜 정부의 인수위와 금융당국은 국민행복기금 적용시기·대상 등을 제한한다고는 하나, 한번 잘못된 선례가 생길 경우 채무자들은 기금을 이유로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언젠가 정부가 해결해 줄 것’이라 믿게 되는 ‘도덕적 해이’ 유발을 피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도 국민행복기금 지원 대상에 포함시킬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기금을 외환위기 때 사업 실패로 금융거래가 막힌 국민들을 위한 측면에서 접근해 달라’고 주문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채무 버티기가 행태가 신용불량자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연체 기간은 길어지고 상환 포기는 확대되는 모습이다.

은행연합회가 집계한 3개월 이상 채무불이행자는 지난 1월 말 123만 9000명이다. 이 중 6개월 이상 채무불이행자는 112만 5000명으로 90.8%를 차지한다. 또한 신용회복위원회가 신용불량자의 채무 장기분할 상환을 유도하는 신용회복 프로그램에는 114만 명이 신청했으나 30만 명이 중도에 탈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신제윤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지난 18일 인사청문회에서 “빚이 있다고 다 탕감하는 것은 아니다. 신청하는 과정에서 신용회복위원회나 회복기금의 전문가들이 자활의지를 확고하게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행복기금이 성실 채무자나 아예 빚을 질 능력이 되지 않는 극빈층에는 역차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13일 ‘저소득층 가계부채의 특징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국민행복기금의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연체가구 수는 49만 7000가구라고 추정했다. 이어 월평균 가처분소득 72만 3000원 중 원리금 상환액이 71만 8000원으로 한계상황에 처했지만 빚을 연체하지 않아 행복기금의 구제 대상이 안 되는 가구는 106만 7000가구라고 집계했다.

이렇게 되면 빚을 갚지 않고 버틴 사람은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탕감받는 반면, 어려운 형편에도 성실히 빚을 갚아 온 사람은 원금은커녕 이자도 깎아주지 않는 캠코의 바꿔드림론을 써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국민행복기금 시행에 앞서 저소득층의 생계대책을 우선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형평성 문제가 대두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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