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원 시인, 작곡가

 
귓가에 옛 동요가 자꾸 맴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그런데 마음이 괴로우면 그 시원한 ‘갈잎의 노래’도 마냥 괴로운 것이 인생이다. 비록 짧게 살다갔지만, 누구보다도 진실했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고, 누구보다도 위대한 생애를 살다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신이 유일하게 인간을 질투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말이 있다. 죽음은 인간의 숙명인가. 왕후장상도 필부필부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나 시간의 유한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다.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이리라. 천재적 음악성을 지닌 가수들 중에 유독 요절한 이가 많다.

‘하얀 나비’의 김정호는 34세.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의 김광석은 32세. ‘내 사랑 내 곁에’의 김현식은 32세.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의 배호는 30세. ‘님 떠난 후’의 장덕은 29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차중락은 27세. ‘사랑하기 때문에’의 유재하는 25세. 세상을 떠났을 당시의 나이다. 생전에 노래 부르던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름들 아닌가. 세상의 모든 예술 활동은 시간의 유한성에 대한 무한도전의 결과가 아닐까. 이것이 바로 신의 질투거리. 신은 영원불멸하지만 시간의 무한성은 결국 허무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짧은 삶은 허무하기는 매한가지.

한국인 평균수명이 81세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 막 홀로서기가 가능해진 이립, 즉 30세 전후에 생을 마감한다면 너무 가혹한 운명이 아니겠는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무조건 기도해야 한다. 대한민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대가 최민식 선생님이 85년 삶에 마침표를 찍고 하늘호수로 영원한 사진여행을 떠나셨다. 고인은 건강을 염려하는 가족의 만류도 뿌리치고 대학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면서 끝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외동딸 최유경 씨는 “아버지가 지난해 과로를 하신 것 같다. 사진하느라 늘 미안해 하시면서 평생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은 인자한 분이셨다”고 눈물지었다.

나는 1967년부터 최민식 선생님으로부터 진실과 정의로 고발하는 사진예술을 배웠다. 1967년 영국 사진연감에 스타 사진작가로 선정돼 작품이 게재되면서 인물 사진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셨다. 귀 멀고 어려운 상황에서 위대한 예술혼을 탄생시킨 베토벤을 사랑하신 선생님이셨다. 인간 사진작품집 14권이야말로 성실한 예술가의 혼을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휴머니즘 작가정신이며, 가난한 사람들, 지울 수 없는 얼굴들이 사진의 오브제였다. 그의 사진은 가슴 저미는 향기가 묻어나는 역사적 증언으로서의 기록이었다. 궁극적으로 인류의 평화와 행복, 사랑을 위해 있는 그대로 사진을 찍으셨다.

매일 빛과 어둠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얼굴을 찾아 길을 떠나시는 고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평소 고인과 진솔한 교분을 나누던 예술계와 종교계 인사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진실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쳐야 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고 고인은 늘 이야기하셨다. 2007년 부산시립미술관에 사진 70점을 기증했고, 국가기록원에도 필름과 작품, 카메라 등 13만 점을 기증하셨던 ‘기부 천사’ 최민식 사진작가.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밤낮없이 시장통이며, 골목골목을 누비셨다. 마지막까지 손질한 15번째 사진집 ‘인간’이 곧 유작으로 출판된다고 하니 마음마저 흐뭇하다. 부디 영원한 명복과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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