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공휴일 지정·정전 60년 기념, 세계평화작가 한한국 일대기

한한국 작가가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네! 제가 워낙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몇 달 혹은 몇 년씩 걸리기 때문에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게 됩니다. 1㎝ 한글로 지도를 그리게 된 사연부터 말씀드리는 게 순서겠네요. 아마 그때가 1993년이었죠. 노태우 정권이 물러나고 김영삼 문민정부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이니까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바로 ‘세계화의 바람’이었다. 그에게도 변화하는 시대에 동참하고 싶다는 고민거리가 생겼다.

“김 명필, 물통 좀 주세요.”

서예학원의 강사로 겨우 밥을 빌어먹던 그 시절에, 그가 동료인 김 강사에게 말을 건넸다. 그들은 아직 세상이 알아주는 명필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서로의 미래를 믿었기에 명필이란 호칭을 쓰고 있었다.

“한 명필! 왜, 아침부터 입 안이 사막인가?”

“요즘 학실(확실)히 세상이 바뀌는 것 같은데, 글씨도 새로운 것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

한창 유행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의 경상도 사투리를 흉내 내며 한한국이 말했다.

“그럼 한 명필이 직접 한글을 세계하(세계화)하는 게 어때요?”

김 강사도 한한국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앞서 있었다. 그러나 김 강사의 이런 조언은 그를 더욱 고민에 빠뜨렸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한 서예작가로서 그는 다름 아닌 아름다운 글씨를 통해, 우리나라의 평화와 화합과 통일을 위해 무언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작업을 해내고 싶었다.

글씨를 잘 쓴다는 이유로 군대에서도 모필병으로 복무했던 한한국이었다. 그러나 제대 후 지금까지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에 잠길 때면 수강생들에게 글씨 시범을 보이다가도 엉뚱한 글자를 괴발개발 그리곤 했다.

“이봐, 한 명필! 지금 글씨를 손으로 쓰는 거야, 발로 쓰는 거야?”

김 강사가 소리쳐서야 퍼뜩 정신이 돌아올 만큼 한한국의 고민도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참으로 묘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

“아니, 여기가 어디지?”

꿈속에서 한한국은 어느 야산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남산 중턱쯤 되는 것 같았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관광버스 행렬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중 외국인도 섞여 있는 게 아닌가. 그는 한 70세쯤 돼 보이는 할머니를 붙잡고 물었다.

한한국· 이은집 공저

▲ 세계최초 UN세계평화지도, 2003-2006, 5m x 3m50cm, 최초의 UN헌장 전문기록, 1조~111조, 총 글자수: 한글 약 4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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