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영웅(英雄)이라고 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그러한 영웅은 난세(亂世)에 많이 출현하는바, 아무래도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 같다. 임진왜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이순신 장군이나 6.25전쟁 중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맥아더 원수를 두고 ‘영웅’이란 호칭을 쓴다. 이와 같이 영웅은 과거 역사 속에서는 숱하게 등장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생소한 이름이 됐다.

중국 드라마를 보면 수많은 영웅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시아앤(N)의 드라마 ‘수당영웅’이 지난 주에 102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작년 12월 말부터 시작되었으니 2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볼거리를 제공했다. 수당영웅은 중국 수나라부터 황금시기라 부르는 당나라 개국 초기까지 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으로 이 드라마에서는 나라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의 덕목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며 백성을 위한 마음이 진정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대강의 줄거리인즉, 서기 581년 북주의 양견이 수나라를 개국하고 수 문제(文帝)로 등극한 후에 끊임없이 안팎의 위기에 시달렸고, 마침내 2대 황제인 수양제가 폭정을 하다가 수나라는 30년 만에 멸망한다. 그 후 얼마간의 혼란기를 거쳐 이연이 세운 당나라가 중국을 재통일하고, 중국 정치의 황금기를 이룬 당 태종 이세민이 등극하기까지의 격변하는 고대 중국 역사 속을 살아간 수많은 영웅호걸과 궁중 여인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다.

정작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최종회에 나오는 치세술(治世術)에 관한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이세민이 황제 즉위 바로 전날에 장모인 소 황후가 거처하는 대흥사를 찾아가 함께 궁궐로 돌아가자고 말하지만 소 황후는 단호히 거절한다. 이에 이세민은 황제로서 선정(善政)할 가르침을 청하는데, 소 황후가 말하는 내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라 한다면 반드시 새겨야 할 금과옥조(金科玉條)였다.

소 황후가 “군왕의 도를 아는가?” 하고 물었다. 이세민은 “백성을 아끼고 스스로 절제하고 충언을 듣는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소 황후는 “군왕의 어려움은 두려움에 있네. 무상의 권력을 가지고 두려움이 없다면 화(禍)를 불러올 것이네. 군왕의 두려움은 첫째가 백성이네, 백성은 물과 같아 배를 뒤집기도 하지. 둘째는 하늘이네. 하늘의 도리가 있으니 거스르면 안 되지. 또한 역사가의 붓은 칼과 같아 모두 사서에 기록하지. 하늘과 백성과 역사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는 게 군왕의 도(道)이네”라는 말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소 황후는 자신이 수나라, 당나라에 걸쳐 황후가 된 경험에서 나라가 망하지 않고 융성하게 되며, 백성이 편안하게 지내는 비책을 함께 일러준다. “군왕이 스스로 절제하는 걸로는 부족하고, 권력과 욕심은 끝이 없으니 조정에서 제왕을 속박하고 규제해야 하는데, 제왕을 규제할 제도가 필요하며, 황제에게 충언하는 자에 대해서는 잘못하더라도 면책해야 바른 언로가 열린다”는 점을 극구 당부하였다. 지도자라면 뼈 속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었다.

각설(却說)하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 기본틀인 정부조직법을 두고 여야가 지루한 공방전을 벌이다가 새 정부에 들어선 지 3주가 지나고서야 겨우 합의하였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자기주장만 옳다고 내세우는 사이에 정부는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바,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면 무언가 다르겠지 하고 생각했던 많은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정치권은 말로는 국민을 위하네하면서 자신의 본분은 망각한 채로 상대 탓만 하였으니 구태 정치는 여전하였다.

정치를 하는 결사체가 정당이고, 정당은 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현재 대한민국 정당은 그 본질적 기능으로서 갖는 정치 역량은 미미하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대표나 최고위원 등이 정치 협상의 주역이 아니고, 제1야당도 당헌상의 대표가 없이 비상 체제에서 임시 대표가 꾸려나가니 대정부 또는 대여 전략에서 구멍이 생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의 기능과 역할이 소중한데 현 상황을 꼬이게 한 정부‧여당의 책임도 크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4%가 ‘박 대통령이 소통을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로 답했다. 이는 ‘잘 하고 있다(17.4%)’보다 월등히 높다. 현재처럼 정치가 벽에 부딪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여당 내에서 자성론이 일고 있음은 다행이다. 정몽준 의원은 “정치적 위기 초래에는 새누리당 책임도 있다”며 박 대통령의 정치적 부재를 지적했는데 이처럼 언로가 틔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북한의 도발 위협이 상존하고, 경제가 침체된 난세에서는 분명 영웅이 출현할 시기이지만, 그저 영웅을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으로 풀이하는 상식선의 해석이면 족하다. 국가 지도자나 여야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열린 마음을 갖고 대의를 펴는 것이 시급한 정국이다. 무릇 정치의 도란 무엇인가? 하늘과 백성과 역사에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함이다. 이것은 군왕의 도(道)라기보다는 모든 정치지도자가 새겨야 할 금언(金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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