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한 양잠업
친환경적·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는다


“‘누에고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이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약 80~90%가 “비단”이라고 답한다. 과연 비단만이 양잠업(養蠶業)에 속할까?

▲ 황금 누에고치. (출처: 누에로 홈페이지)

우리나라 양잠산업의 역사

우리나라 양잠산업의 시초는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따르면 약 4300년 전 고조선 시대부터 양잠이 내려왔고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는 3천년 전 은나라 사람인 기자(萁子)가 들여왔다고 기록됐다.

이후 삼한과 고려를 거치면서 왕들이 앞장서서 양잠업을 장려 발전시켰다. 백제는 일본에 양잠기술을 전파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태종은 왕후에게 궁중에서 누에를 치게 했고 세조 역시 누에의 주식인 뽕나무를 궁중에 심게 했다. 세조는 심지어 뽕나무를 말라 죽게 한 농가에 형벌을 내렸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양잠업 사랑은 대단했다.

또 역사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단은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삼국시대엔 실크로드를 통해 비단이 유럽에 수출돼 현지인들에게 인정받았으며 당대 질 좋은 비단을 자랑하던 중국에서도 우리나라 비단을 일품으로 여겼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접어들면서도 양잠업은 함께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잠업증산시책’을 시행해 양잠업은 수출산업 중 효도산업으로 꼽혔다. 그러나 1980년대 중국이 경제개방을 외치면서 비단을 대량생산하게 됐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 양잠업은 점차 침체 일로를 걷게 됐다.


다시 인정받는 국내 양잠업
입는 양잠업에서 암 등 불치병 치료제까지


중국의 양잠업의 대량생산으로 침체 됐던 국내 양잠산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 ‘입는 양잠업에서 먹는 양잠’에 초점을 맞춰 꾸준히 연구개발을 해왔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기능성 양잠기술의 강국으로 다시 발돋움하게 됐다.

정부는 이처럼 전통적이면서도 발전가능성이 있는 양잠업을 위해 지난 4월 ‘기능성 양잠산업 육성 및 지원법’을 제정했다. 이 법안은 올 11월 말에 시행될 전망이다.

이광길 농촌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장은 “양잠산업은 뽕나무의 저탄소기능, 누에의 환경감시기능 등 고부가가치 신소재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능성 양잠기술을 통해 실크인공뼈, 누에의 생체공장화기술 등 식·의약 소재 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1조 원의 양잠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에는 ‘누에’의 효능을 177여 가지로 기록했다. 동의보감을 토대로 농가와 학계는 손을 잡고 연구한 결과 혈당을 낮추는 ‘누에가루’를 발견해 당뇨병 치료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갔다. 이어 암, 아토피 등 각종 질병에도 누에효과가 통한다는 것을 찾았다.

누에는 동충하초(冬蟲夏草) 생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동충하초는 야생 채집으로 소량이었으나 1998년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누에 동충하초를 개발해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다.

이 외에도 누에를 이용한 식·약품 분야로 실크비누(2001), 실크화장품(2002), 실크치약(2005) 등 생활과 밀접한 제품이 출시됐으며 2007년에는 기억력 향상에 좋은 ‘피브로인 BF-7’이 개발돼 화제를 모았다.

의료산업에서도 누에가 빛을 발하고 있다. 농진청 누에연구팀은 누에고치에서 나온 실(비단)의 단백질을 이용해 인공뼈를 만들겠다는 것. 여주홍 연구실장은 “비단 단백질이 우리 몸에서 세포와 세포 사이를 메우고 있는 섬유 상태의 단백질인 ‘콜라겐’과 비슷한 특성을 지녀 인공뼈 등 생체 친화적 의료용품으로 쓰일 것이다”고 기대했다.

지난해 정부는 우리나라의 양잠기술을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튀니지에 전파했다. 튀니지 측은 “한국의 양잠기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세계 패션 중심지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조은기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원장은 “현재 식품소재에 치중해 있는 양잠기술을 향후 건강기능식품으로 확대하고 더 나아가 고부가가치를 지닌 식·의약품 산업을 위한 기틀을 마련할 예정이다”며 “바이오소재로 새롭게 부상하는 양잠산업이야 말로 녹색기술 창출에 앞장설 것이다”고 강조했다.

▲ 뽕잎과 열매인 오디. (출처: 누에로 홈페이지)

더 나은 양잠업 발전을 위한 각 계층 노력 필요

양잠산업이 다시 살아나면서 지난해 기준으로 뽕밭 면적은 1900㏊로 2000년 1300㏊보다 600㏊가 늘었지만 양잠 부산물을 다양하게 가공할 수 있는 생산 기반이 부족하다.

농진청 관계자는 “양잠업의 생산 기반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지만 지난해 누에와 뽕잎, 오디 등 기능성 양잠 산물의 국내 시장 규모는 약 500억 원대로 추정한다”며 “양잠 부산물의 수요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다시 양잠업에 뛰어드는 농가수와 뽕나무 재배면적도 늘어날 것이고 무엇보다 국내 양잠업 시장 규모도 커질 것이다”고 밝혔다.

농가 측은 “양잠산업이 발달하긴 했지만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잠업 농가들이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원 누에로 사장은 “현재 양잠을 이용해 주로 개발하는 것은 기능성 식품이다. 실험을 통해 식품의 효능을 증명했지만 현행법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에 따르면 현행법이 식품과 의약품을 구분 짓기 때문에 식품에 약 효능을 표기 할 수 없고 표기를 할 경우 허위광고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으로부터 제재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는 “한때 농가들이 검증된 양잠 기능성 식품을 다 만들어 놓고도 현행법 때문에 4년간 시장에 내놓지 못해 막대한 손해를 본 적이 있다”며 “이 법안에 따라 의약품으로 만들게 될 경우 제약회사의 식품사업부만이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농가는 생산만 하는 꼴이 돼 부가가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양잠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홍보도 필요하다. 참살이 열풍으로 대중매체에서 효과가 입증된 양잠 식품을 소개하면 매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아 농가는 양잠으로 일정한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양잠업. 더욱이 세계에서 우리나라 양잠업이 인정을 받고 있는 데에는 농가, 학계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감춰져 있다. 또 나라 전체가 녹색성장을 추구하는 이 때 양잠업이야말로 고부가가치성을 지닌 친환경 산업인 만큼 미흡한 부분을 속히 채우고 연구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