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표 청년 이민호 씨

▲ 화살표 청년 이민호 씨가 서울역 환승센터 앞 버스노선도에 부착한 화살표스티커를 가리키며 미소 짓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정류장 돌며 버스노선 방향 표시 화살표 스티커 부착
서울시장 표창 수여에 취업까지 이어진 ‘나비효과’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버스를 반대로 타 곤욕을 치른 경험은 한 번쯤은 겪을 법한 흔한 일이다. 더구나 타고난 길치에 방향표시까지 없는 노선도를 본다면 운전기사에게 방향을 물어보며 발목을 잡는 일은 감수해야 한다.

이런 일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개선의 대상으로 보고 직접 나선 이가 있다. 바로 ‘화살표 청년’ 이민호(25) 씨다.

이 씨 역시 길치다. 흔히 하는 인ㆍ적성능력 검사에서 공간지각력을 측정하는 문제는 거의 맞춰본 적이 없다. 지금에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검색이 손쉬워 길 찾는 일이 예전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명에 어두운 어르신이나 길치에게 길 찾기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스마트폰이 있기 전에는 지하철만 탔었어요. 버스노선도는 볼 엄두도 못 냈죠. 지금도 버스를 타다 보면 어르신이 운전기사에게 역 이름을 물으며 확인하는 모습을 종종 봐요. 안타깝죠. ‘노선도에 방향표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어보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운전기사 입장에서도 훨씬 수월할 것 같았어요.”

이 씨는 문구점, 인터넷을 온통 뒤져 화살표 방향 모양의 스티커를 찾아 구입했다. 서울 시내 버스정류장을 돌며 3~4주 정도 붙이고 다녔다.

하지만 종이로 된 스티커는 비에 젖어 찢어지거나 호기심 어린 사람들 손에 금방 훼손됐다. 그래서 업체에 의뢰해 직접 제작에 나섰다.

“기존 제품은 훼손이 심해 사용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스티커 제작 업체에 문의했죠. 직접 디자인하고 도안을 넘겼어요. 또 비에 젖어도 손상되지 않는 코팅 재질로 제작 구매했어요. 개인이 소량으로 제작하다 보니 금액도 12만 원이나 들었죠. 어떻게 보면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개선을 목표로 시작했으니 끝을 맺어야겠다는 결심이었어요.”

지난 2011년 가을 시작한 버스노선도 방향표시 화살표 붙이기 작업을 통해 이 씨는 그동안 알지 못한 많은 문제점도 발견했다.

노선도가 찢어지거나 누락돼 없는 곳도 있었고 정류장에 쓰레기통이 구비되지 않아 벤치 가득 쓰레기로 쌓인 경우도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이런 문제점들을 발견한 그는 하루에 5시간에서 많게는 15시간을 도로에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한 사람의 불편이 아닌 시민의 불편이기에 공론화되고 문제가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그래서 언론에도 제보하곤 했지만 저 한 사람의 선행을 알리는 것에 그쳐 너무 아쉬웠어요. 하지만 결국 시에서 알게 되고 서울시장님에게까지 알려져 함께 방송에 나가게 됐죠.”

이 씨는 2012년 4월 ‘원순씨의 서울이야기’라는 서울시장의 인터넷 방송에 함께 출연하게 됐다. 기회를 잡은 그는 그동안 화살표 작업을 하며 모은 자료를 시장에게 전달했고 버스정류장과 노선도에 대한 문제점을 적극 알렸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씨는 서울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한 사람이 시작한 일이지만 표창까지 받고 주목을 받고 보니 기분이 얼떨떨해요. 하지만 덕분에 서울시에서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실제로도 작년 10월 시 전체적으로 노선도 보수를 실시했어요. 올해 하반기에는 전체 버스노선도 디자인도 개선해 보기 편하게 만들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이 씨는 작은 불편을 해결하고자 실천에 옮긴 행동이 ‘나비효과’를 일으켰다고 말한다. 단순히 화살표를 붙이는 작업이었지만 이 일은 시민의 의식을 깨우고 서울시를 움직였다. 또 개인적으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진로로 취업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처음 화살표를 붙일 때는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취업에 지장이 있다고 걱정하실 게 분명했죠. 친구들조차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는 일에 열중했어요. 그런데 시장 표창을 받고 언론에 공개되다 보니 한 기업 인사를 담당하시는 분이 보시고 연락을 해왔어요. 이력서를 넣어보라고요.”

그동안 학점은행제를 통해 전자관련 학위를 취득하고 있던 이 씨는 이미 몇 차례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한 바 있다. 소위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토익점수나 봉사점수 등이 부족한 탓이었다.

하지만 이 씨의 활동을 접한 기업에서 사회공헌파트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연락이 닿아 현재는 당당히 대기업 사원이 됐다. 화살표를 붙이기 시작할 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저 같은 청년들은 요즘 개인적인 경향이 있고 스펙만을 위주로 생각하며 살아가요. 하지만 남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를 희생하고 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로 인해 내가 정신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진정한 나눔의 가치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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