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취임한 지 10일도 되지 않은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강공을 펼쳤다. 야당은 독선이라 비난하고, 여당은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가장 나중에 내밀 카드를 먼저 내민 꼴이라 국민도 당황스럽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절한 방법은 금선탈각이다.

<삼십육계>에서는 금선탈각을 ‘존기형, 완기세(存其形, 完其勢). 우불의, 적부동(友不疑, 敵不動). 손이지, 고(巽而止, 蠱)’라고 했다. 형(形)은 전투를 위해 펼친 진용, 세(勢)는 싸우려는 태세를 의미한다. 아군의 진용을 유지하면서 계속 싸우겠다는 태세를 강력하게 표시해야 우군은 결전의지를 의심하지 않으며, 적도 함부로 도발하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대통령의 완고함이 옳다.

그러나 적과 우군을 모두 속여서 아군의 주력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거나 새로 발견된 적과 싸우기 위해 이동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금선은 매미, 탈각은 허물을 벗는다는 뜻으로 새로운 적과 대적하기 위해 매미처럼 껍질만 남기고 사라지는 분신술(分身術)이다. 새로운 적은 핵개발 이후 공세를 펼치는 북한이다.

새로운 적을 격파하고 본진으로 돌아왔을 때 우군이나 적은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도 있고, 모든 상황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모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곤충은 성장과정에서 허물을 벗고 변신한다. 곤충이 남긴 허물은 형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현상을 보고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과 비유했다. 사마천은 굴원(屈原)이 초회왕에 대한 원망 때문에 ‘이소(離騷)’를 지었다고 말했다.

“<시경>의 ‘국풍’은 호색(好色)이 소재이지만 음란하지 않고, ‘소아(小雅)’는 원망이 소재이지만 난잡하지 않다. ‘이소’에는 이 두 가지가 겸비되어 있다. …… 문장은 간단하지만 묘사가 섬세하여 깨끗한 마음과 소박한 행동을 잘 표현했다. 분량은 적지만 가리키는 것은 매우 크다. 비근한 예를 들었지만, 보여주려는 것은 원대하다. 간결한 마음을 향기로운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깨끗한 행동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시궁창처럼 더러운 곳에서 깨끗이 몸을 씻고 벗어나려고 했다. 허물을 벗는 매미처럼 혼탁함과 더러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드디어 먼지투성이의 세상에서 초탈하여 마음대로 떠다님으로써 더러움에 물들지 않을 수 있었다. 깨끗한 사람은 진흙탕에 있어도 더러워지지 않으니, 굴원의 지조야말로 해와 달과 광채를 겨누어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회남자 정신훈>에서는 ‘매미가 허물을 벗고, 뱀이 껍질에서 나오는 것처럼 태청(太淸)의 경지에서 노닌다.’고 했다. 불가와 도가에서는 탈각을 득도한 사람의 우화등선(羽化登仙)에 비유하기도 했다. 금선탈각이 개인적 모략으로 사용된 경우는 원대(元代) 이후이다. 원의 혜시(惠施)가 ‘병서에서 금선탈각계를 얻었다’고 한 이후 여러 문학작품에서 금선탈각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마치원(馬致遠)의 <삼도임풍자(三度任風子)>, 관한경(關漢卿)의 <사천향(謝天香)>, 오승은(吳承恩)의 <서유기(西遊記)>에 금선탈각이라는 말이 나온다. 문학에서는 대부분 몰래 도망친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여의봉으로 호랑이를 때렸지만 오히려 자기 손이 아팠다. 알고 보니 호랑이 껍데기를 바위에 씌워놓은 것이다. 손오공은 금선탈각계에 걸려들었다고 외쳤다.

본문의 ‘손이지(巽而止) 고(蠱)’는 <역경>의 18번째 괘인 산풍고괘(山風蠱卦) 단전(彖傳)에 나오는 말이다. 고괘는 오래된 폐단을 제거하여 혼란을 다스리는 것을 상징한다. ‘고(蠱)’는 상형문자로 위에는 벌레(虫) 세 마리가 모여 있고, 아래에는 그릇(皿)이 있다. 바람이 통하지 않아 그릇에 담긴 음식이 부패하여 벌레가 생긴 형상이다. 부패를 제거해야 ‘크게 형통(元亨)’하게 된다.

만물은 음양의 교감과 상호보완으로 생성되므로 음양이 분리되고 상하가 단절되면 생명력이 고갈되어 부패와 혼란이 조성된다. 근본적인 폐단을 극복하고(元) 상하가 형통하게 되면(亨) 천하가 안정된다. 정치투쟁은 변화무쌍하므로 현재의 상황만으로 길흉을 가늠하지 못한다. 신중한 사람은 억지로 일을 저질다가는 실패한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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