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무소 수형기록표 신장 기록 논란

▲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을 때 수형기록표로, 신장 치수 숫자가 논란이 되고 있다(노란 원). (사진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유관순 열사의 키는 5척 6촌일까? 아니면 5척 0촌일까?….”

지난 1일, 삼일절을 맞아 유관순 열사의 수형기록표에 기록된 신장 치수를 재검토한 결과가 발표돼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수형기록표 기록자의 필체에 대한 논란이 다시 예상된다.

유 열사의 신장은 지난해 조용진 전 서울교대 교수가 유 열사의 얼굴 원형을 3D 디지털로 복원한 결과를 발표하며 새롭게 확인된 바 있다. 기존에 수형기록표 기록인 ‘5척 6촌’이 아닌 ‘5척 0촌’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개최한 월례 연구발표회를 통해 기존의 ‘5척 6촌’ 입장이 옳다는 주장이 다시 한번 제기됐다.

천안 향토사학자 임명순 씨의 주장은 ‘유 열사 수형기록표의 6촌(寸) 글자를 0촌(寸)으로 보아야 하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것과 ‘유 열사 친구였던 남동순 여사의 “관순이는 나보다 작았어”라는 증언을 신빙할 수 없다’는 것과 ‘유 열사 얼굴을 보건대 큰 키일 수 없다는 ‘안면형태학적 추론’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주장의 근거인 수형기록표를 재검토하고, 151.5㎝(5척 0촌) 방증 자료로 제시된 유 열사 친구 남동순 여사의 증언을 살피고, 유 열사의 형제들 사진을 통해 유 열사 집안 신장 내력을 살폈다.

임 씨는 “기록표의 ‘6’자는 기록자의 독특한 필체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며 “다만 글자 마무리를 하면서 특유의 ‘돼지꼬리’를 했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6’자를 기록표에 자주 보이는 ‘0’자와 동일시할 명확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굳이 ‘6’자를 ‘0’자로 읽어야 하는 적극적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0’이 기록된 다른 수감자들의 기록표를 제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많은 수형기록표를 검토한 결과 당시 신장을 재서 기록한 이가 따로 있고, 지문을 찍게 하고 번호를 쓴 사람이 있고, 이름도 다른 기록자가 썼을 가능성이 높다.

기록표 신장에 표기된 숫자만을 비교해볼 때 어떤 ‘0’자 필체에서도 유 열사 기록의 ‘6’자처럼 위 꼬리가 확연히 드러나는 ‘0'자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0’자의 표기 방법은 다른 숫자의 크기보다 항상 작게 표기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유 열사의 수형기록표와 대비하면, 5척(尺), 6촌(寸), 0분(分)의 표기가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169.68㎝가 확실하다”고 밝혔다.

▲ 5척(尺), 6촌(寸), 0분(分)‘으로 표기된 수형기록표 모음 (사진제공: 독립기념관)

유 열사의 어릴 적 소꿉친구라고 알려진 남 여사의 증언에 대해 임 씨는 “그동안의 증언은 여러 곳에서 진실성이 떨어진다”며 “연로한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모순된증언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 열사가 남 여사 보다 두 살이 많은 언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유 열사 형제들은 모두 키가 컸다는 것이 ‘5척 6촌’임을 확실히 해준다는 것이다. 세 살 위 오빠인 유우석의 사진과 동생 유인석의 사진을 보면 유 열사도 키가 작지 않았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사학자들은 “열사의 신장 기록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인의 몸으로 독립 투쟁하고, 애국 의지를 불태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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