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데니스 로드맨과 김정은의 별난 쇼비즈니스
[스포츠 속으로] 데니스 로드맨과 김정은의 별난 쇼비즈니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1990년대 중후반 시카고 불스의 경기를 열심히 보면서 다소 염려스러운 것이 하나 있었다. ‘코트의 악동’ 데니스 로드맨의 몸에 새겨진 현란한 모양의 타투(문신)가 눈에 많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농구선수가 타투를 한 것은 국내서는 보기 드문 기이한 광경이었다. 로드먼의 타투는 별, 하트 모양 등 기기형형한 기호와 이미지를 갖고 있어 청소년들에게는 자칫하면 반항적인 성향을 부추길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큰 아들이 시카고 불스의 경기를 워낙 좋아했던 만큼 로드맨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고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히도 아들은 로드맨을 비롯한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등이 펼치는 경기만을 좋아하고 로드맨의 평범하지 않은 개인행동 등은 따라하지 않았다.

코트를 떠난 지 오래된 로드맨이 지난주 생생한 TV 스타로 모습을 드러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51세의 나이지만 코와 귀에 피어싱을 하며 파격적인 이미지를 보인 로드맨의 모습은 여전했다. 그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은둔의 왕국’ 북한에서였다. 미 묘기 농구단 할렘 글로브트로터스(the Harlem Globetrotters) 단원 3명과 케이블 방송 HBO의 새 매거진 시리즈 ‘바이스(Vice)’ 기자 1명 등과 함께 쇼비즈니스의 일환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것이다.

중국 북경에서부터 미국 주요 언론의 집중취재를 받았던 로드맨은 평양에 도착하면서 순안공항에서부터 북한 관계자들로부터 국빈급 환대를 누렸다. 로드맨 일행의 공식적인 행사 모습은 북한 관영 TV에 의해 자세히 소개됐다. 관중으로 꽉 들어찬 유경정주영체육관에서 벌어진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와 조선체육대학 횃불팀의 혼합경기는 물론 대동강변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을 관광하는 모습 등이 방영됐다.

특히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 나란히 경기를 참관하는 로드맨의 모습은 북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줄 만했을 것 같다. 김정은의 옆자리에 앉은 로드맨의 테이블에는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가 놓여져 있었으며, 로드맨의 겉모습도 단연 튀는 모습이었다. 최근 자신의 자서전 홍보를 위해 결혼예복차림으로 나타나기도 했던 로드맨은 검은색 정장에 ‘USA’라고 크게 쓰인 검은색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벗지도 않았으며 얼굴에 피어싱을 한 채였다.

절대권력자인 김정은이 서방 인사들을 공식적으로 만난 첫 대면으로 기록된 로드맨과의 회동은 일거수일투족이 북한 언론에 의해 공개됐다. 북한 중앙TV는 여성앵커의 멘트로 “우리 당의 최고 영도자인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는 리설주 동지와 함께 평양 유경정주영체육관에서 시내 체육 애호가들과 각계 시민층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NBA 이전 선수 데니스 로드맨과 일행을 만나고 미국팀과의 혼합경기를 관람했습니다”라며 이날 경기 전후의 모습을 자세하게 화면과 함께 소개했다. 또 노동신문은 1일자 1면 전체에 기사와 사진을 실었으며 2면 절반도 미국 농구소식으로 채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드맨 초청은 북한 농구협회와 조선올림픽위원회가 추진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나 실상은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위기국면을 맞은 한반도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정치·외교적인 제스처로 보는 것이 미국과 한국 외교통들의 분석이다. 이번 행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로드맨 측이나 북한이나 흥행을 위한 ‘쇼비즈니스’적인 면이 짙다. 로드맨을 방북인사로 내세운 미국의 바이스사는 케이블 TV HBO에서 방영할 새 뉴스매거진 프로물로서 깜짝 주목을 받을 다큐멘터리 TV 제작물을 위해 평양 농구쇼를 연출했으며 핵실험으로 국제적으로 제재와 고립을 당할 위기에 놓인 북한은 로드맨 쇼를 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인 무기로 활용했던 것이다.

보통 북한 사람들은 정보통신 인프라의 부족으로 인터넷을 거의 이용하지 못하고 3D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도 없어 로드맨과 김정은의 별난 ‘쇼비즈니스’를 많이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드맨의 파격적인 모습은 20여 년 전 로드맨의 타투를 보고 정서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던 필자의 걱정만큼 대외 개방을 기피하는 북한 당국자들에게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안겨줄 것으로 본다. 두 ‘악동(bad boy)’의 만남에서 장기적으로 정작 큰 손해를 보는 측은 북한의 김정은이 아닐까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