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새 정부의 초대 내각을 꾸리는 장관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일부 부처의 장관은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였고, 일부 부처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조직법이 아직 통과되지 않아 청문 절차를 마치고도 발령받지 못해 국정 수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건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운영하려는 국정을 뒷받침하는 정부조직 개편에 대해 야당에서 이런저런 사유를 들어 미루고 있으니 기세 있게 출범한 새 정부의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일이 이렇게 되자, 여야는 정부조직법 개정 지연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있다. 그렇지만 책임소재를 따지는 게 핵심이 아니다.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야당 대표에게 “잘 좀 처리해 달라”고 당부를 했고, 청와대 대변인도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조직법 개편 안 처리에 국회가 도와주십시오” 사정을 했다. 어쨌든 새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스타일을 구겼는데, 당차게 시작하려던 박근혜 정부가 국정의 중심축이 없어 잠시 주춤하게 됐다.

새 정부 출범 1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정부조직법은 하루빨리 국회의 표결에 붙여져야 한다. 야당에서는 정부·여당이 잘못했다고 꼬투리를 잡고 있지만 언제까지 샅바싸움을 하며 국가대사에 등한시하는 꼴을 국민이 지켜보란 말인가. 국회 지연처리가 ‘야당의 새 정부 발목잡기’라는 국민 인식은 정부조직법이 적절하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47.7%로써 부적절한 내용이라 답변한 자 14.5%보다 월등히 높은 국민여론 조사에서도 입증이 되는 셈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나 당선인이 향후 5년간의 국정을 운영해나갈 책임이 있다. 그리고 헌법상 정부의 대표가 대통령임은 모두가 아는 터에 새 대통령이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을 위해 정부를 이끌어 나가면서 국정 철학을 담는 정부 부처를 가장 효율적이고, 성공할 수 있도록 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함에도 정부조직법이 확정되지 않아 장관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것은 여야 정치인이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정부조직법 개정과 관련하여 여당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든, 야당이 발목을 잡았든,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이 무리수를 둔 것인지는 여론조사에서도 이미 나타났듯 국민이 그 전후 사정을 헤아려 잘 알고 있다. 그 문제로 여야가 티격태격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갖다 붙이는 변명이나 빌미에 지나지 않을 뿐더러 중요한 점이 아니다. 문제는 조속히 정부조직법이 국회에서 의결되고, 그에 따라 장관 책임 하에 국정이 잘 운영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대통령이 국정의 최고지도자다. 특히 분권형이 아닌 중앙집중식 권력제도 하에서 대통령의 합법적, 합리적 국정 통솔이야말로 정권에 책임지는 자세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내각을 통솔하겠다고 밝힌 의지는 국가발전과 국민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이행하는 일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부터 일관되게 국무총리의 권한을 강화하고 책임 장관제를 시행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일부에서는 ‘강한 청와대를 만든다’느니 하여 청와대에 무게를 싣곤 있지만 관료‧전문가 위주로 짜인 내각 후보의 면면을 보면 책임 장관제의 시행은 약속대로 이행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대통령과 행정부이고,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이 국정의 중심축이다. 또한 국정 운영의 법적 최고 회의체가 각 부 장관 겸직의 국무위원이 참석하는 국무회의임은 새삼스러울 리 없지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과거 정부에서는 국무회의보다는 청와대 비서실 수석회의가 국정 운영의 중심노릇을 해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볼 때에 청와대 비서실은 참모기능이지 계선조직이 할 수 있는 집행기구가 아니다. 따라서 국정의 중심적 의결기구인 국무회의나 각 부처에서 이루어진 일에 대한 보고나 참모로서의 본연의 역할은 가능하겠지만, 직접 정부계획을 입안하여 확정하고 실무적으로 집행하는 일은 아닌 것이다.

정부의 일에 대하여 대통령 참모기능인 비서실에서 일일이 간여를 하게 되면 정부기능의 정통성과 책임 장관제의 의도가 흐트러진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 청와대 비서진 인선과정에서 ‘청와대 비서진을 통해 내각을 직접 관장한다’는 말이 돌아 비평을 받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그 당시 당선인 신분에서 ‘비서는 비서일 뿐 일은 장관들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여 그 임무에 대해 명백히 했다.

“비서는 귀는 있지만 입이 없다.”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의 취임 일성은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과 장관의 기능이 어떠한지를 제대로 알고 대답한 말이다. 행정고시 출신인 허 실장은 내무부 지방행정국장을 역임하고, 관선시절 마지막 충북도지사를 한 경험이 있어 참모와 계선기관의 역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다. 대통령이 장관을 제쳐 두고 비서진을 통해 국정을 장악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권위와 기능을 약화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빨리 새 정부의 내각이 임명되어 국정의 중심축으로서 신성한 책무를 다해주기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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