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한반도의 안보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의 등장으로 새로운 남북관계 시대가 열리고 있다. 남북의 국력이 지난 1974년에 역전되어 우리가 40여 년간 선두를 달려왔지만 일단 군사력 측면에서만 보면 북한이 앞서 있는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물론 경제력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의 전반적 국력은 여전히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력은 핵무기 전략과 특수전 전략, 생화학 무기 등 주로 비대칭전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대칭(asymmetry)’의 사전적 의미는 말 그대로 대칭이 아닌 상태, 즉 불균형 상태를 말한다. 군사용어로 사용되는 경우에 주로 위협(threat), 무기(weapon), 전략(strategy)등과 함께 쓰이는 이 단어는 주로 ‘적군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수단을 사용해 비교우위를 누리고자 하는 시도’를 지칭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는 전력이지만 우리마저 대량살상무기 전략으로 대응할 경우 한반도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될 수밖에 없다. 너도 나도 희생자가 되는 그런 안보를 무엇 때문에 준비한단 말인가. 현대사회에서 안보는 급속도로 다원화되고 있다. 군사안보는 물론이고 식량안보, 수자원안보, 기후안보에 이어 문화융성마저 안보의 구성논리로 보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바로 이 점을 우리는 중시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공약에서 문화융성을 주요 아젠다로 선언하였는데 마침 지금 북한이 남한의 한류열풍으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안보와 통일을 별도 조항에서 빼고 문화융성을 넣은 깊은 뜻을 취임사에서 선뜻 읽은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재 북한 주민들의 머리를 지배하는 문화구성을 보면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노래가 70%, 그리고 나머지 30%만이 노동당 문화로 채워져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흔히 북한 주민들은 ‘아래동네 꺼’라는 암호로 한국문화 상품을 선호하고 있는데, 더욱 가관인 것은 평양의 고위층 자재들이 여기서 솔선수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둘째아들 김정철이 싱가포르까지 날아가 에릭 클랩튼의 공연을 볼 정도로 열광하는 팬인데 북한의 보통 주민들이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북한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영화 한 편을 보는 동안에도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 이에 장사 수완이 좋은 화교 상인들은 배터리를 부착한 DVD 플레이어를 개발해 북한으로 들여오고 있다. 가격은 한국 돈으로 2만 원 정도, 북한의 컴퓨터 보급 대수는 400만 대이고 휴대전화 즉 손전화기는 150만 대로 추산되고 있다. DVD보다 작아 숨기기도 편하고 용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USB도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 정도 역량이면 우리의 우월한 문화상품을 공수할 인프라는 충분하다. 문명은 철길을 따라 진화했다지만, 우리의 문화융성이 북한으로 확산되는 데 특별히 길은 필요 없다.

한류가 북한으로 흘러가는데 북한 정권의 장벽은 더 이상 장벽이 될 수 없고, 인터넷과 트위터, 페이스북을 언제까지 김정은 정권이 가로막을 수는 없지 않을까. 제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러시아도 쏟아지는 운석폭우를 막을 수 없듯 북한 정권의 외부문화 유입방해도 오래가기 힘들 것 같다. 우리의 범람하는 문화융성의 위력을 북한 동포들에게 전달하는 길이 곧 통일의 길임을 자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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