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인간탄환으로 불리고 있는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27) 선수는 현재 육상 100m와 200m 부문에서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 선수가 두 부문을 동시에 석권(席卷)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그것은 주법(走法)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행이 볼트는 큰 키로 인해 뒤늦게 가속도가 붙는 장점으로 인하여 200m에서도 19초19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는 세계 최고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훈련, 또 훈련 그것뿐이다”라는 말로 비결을 알려주었다.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는 마라톤을 ‘육상 경기의 꽃’이라 한다. 2시간 이상 달리면서 무언가를 생각해야 하는 다분히 철학적 요소가 가미된 종목인데 연습량이 절대적이고 작전도 필수적이다. 연습한 대로 달려야 하는 200m 달리기 역시 그렇다. 그 코스를 직접 뛰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100m 달리기처럼 전력 질주했다가는 골인지점에 못미처 거의 기운이 소진하여 다리근육 마비 등 급격한 체력적 한계로 기록이 떨어진다. 그러니 200m 달리기는 100m 주법으로는 어림없고 라스트에 온힘을 쏟을 수 있는 알맞은 주법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자기 실력 이상으로 처음부터 힘을 너무 내는 것을 ‘오버페이스(Over pace)’라 하는데, 코스별 공략이나 대응 주법 등을 모르고 나갔다가는 영락없이 실패를 하고 만다. 이것은 비단 육상에서뿐만 아니다. 크게는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층이나 대기업을 운영하는 오너도 마찬가지고, 작게 보면 군소단체를 꾸려나가는 자들이나 개인 가계에서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특히 공공을 위한 것이나 책임감이 따르는 대표적 행동에는 늘 조심해야 한다.

드디어 오늘,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가 열렸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정부를 대표하는 최고지도자이다. 그래서 대통령이란 자리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책무 이외에도 국민에 대한 무한량의 책임과 의무가 있다. 사상 첫 여성대통령이 바라왔듯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행복시대로 가는 문을 열겠다는 의지에, 국민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처럼 새롭게 시작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기대가 매우 크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대통령과 정부를 가졌지만 시작과 끝이 같지 않아 지난 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좋지 않았다.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는 2월의 날씨는 변덕이 많았다. 5년 전 취임식 날은 서울지방에서 눈이 내렸는데, 날씨가 포근하여 내리자마자 눈이 녹는 바람에 거리나 골목은 지저분하였고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하였다. 그래도 작은 불편보다는 가슴 속에서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는 첫날이라 무언가 새로움이 이루어지겠구나 하는 기대치가 컸다. 지긋지긋한 경제난에 쓴 맛을 본 백만 청년 백수들이 세상의 변화를 바랐고, 이 땅의 국민 모두는 함께 잘 되기를 축원했다.

올 겨울이 유달리 추운 가운데 2월 날씨도 만만치가 않았다. 첫날에 난데없이 폭우가 쏟아져 남부지방은 기상관측 이래 신기록을 세웠고, 서울만 해도 87년 만의 겨울폭우를 맛보았다. 그러다가 며칠 후에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지역에 폭설이 내렸고,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등으로 사람들은 느닷없는 기상변화에 당황하면서 더욱 몸을 웅크렸다.

기상 이변에 대응하여 인공강우 등 과학적 실험이 가능하다지만 자연기상은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연현상에 맞추어 순리와 상황에 제대로 맞게끔 하는 것만이 상책이었다.
그러한 근본 대책은 국가가 마련할 일인데, 국운 상승을 좌지우지한다는 정치‧경제에 대한 대응책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오늘 첫 출발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간단하다.

대통령이 내세우는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고, 선한 정치를 당부하는 것이다. 정치라는 말이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공자의 가르침과 지혜를 일깨우는 일이다.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하되, “식량을 충분하게 하고(足食), 군비를 충분히 하며(足兵), 백성이 정치를 신뢰하게 하는 것(民意)”이라고 일러주었다. 이 말은 신의가 정치의 으뜸이라서 ‘국민의 신의를 잃으면 안 된다”는 경구다. 민의가 바탕이 되지 않는 정부라면 정도(正道)의 정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부가 출범되기 이전부터 국민에게 행여 불신의 씨로 남아 있는 불통(不通)의 벽을 허물고 국민 속에서 파고 들라는 부탁이다.

하여 대통령 임기 동안 위민정신(爲民精神)의 원칙과 신뢰로 국정을 운영하여 국운상승을 꾀해 달라는 국민적 기대를 전한다. 국민 모두와 함께 지향하는 그 목표점이 100m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테고, 200m라 한다면 더욱 신중하고 조심할 일이다. 당장 새 정부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하여 앞서나가려다 무리하여 오버페이스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꼴이 되고 만다. 국민은 파천황(破天荒)하여 달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게 해 달라는 평온무사(平穩無事)함을 국민은 당부하고, 또 당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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