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 정권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특권층은 누구인가. 지난 20여 년간 선군정치의 그늘에서 군부 엘리트들이 그 핵심에 있었다. 그러나 2010년 김정은의 등장과 함께 군부 엘리트들은 당 아래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 당과 내각의 간부들이 서서히 권력 핵심부로 나가서는 듯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북한의 대외정책이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3차 핵실험 등 강경모드로 전환한 가운데 다시 군부 엘리트들이 부상하고 있다.

김정은이 지난해 직접 지시를 내려 고급 장성들에게 전자결제 카드를 지급하고 달러를 사용하도록 하는 등 ‘특별대우’로 전환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장령들의 생활을 당에서 직접 책임지고 보장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따라 특별대우가 잇따르고 있다.

북한에서는 한국군의 장성을 장령으로, 상좌(연대장)와 대좌(부사단장 급)를 고급군관으로, 그 이하 장교를 군관으로 부른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인민군 대장이 매달 미화 1200달러, 상장이 1000달러, 중장이 700달러를 받는 등 계급에 따라 차등 지급되고 있다. 북한 장령뿐 아니라 인민군 정찰총국 산하 대남침투 요원과 전자전 부대(해킹 전담) 고급 군관들에게도 전자결제 카드가 일부 지급되고 있으며 북한군 정찰총국 산하 모 대좌(대령)는 한 달에 쓸 수 있는 한도가 400달러 정도로 일반 소장급의 대우를 받고 있다.

소식통은 “장성들은 이 카드를 평양의 외화상점과 식당에서 사용하며, 청진과 함흥 등 지방 휴게소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장성들에게 고급 주택과 전용차를 제공하고 매일 특별배급을 하는 등의 혜택을 줬다. 군 장성들에게 전자결제 카드를 지급하는 제도는 김정은 체제 들어 실시된 것으로, 군부를 장악하고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특혜로 보인다. 카드 결제에 쓰이는 달러의 공급 주체가 마약과 무기, 천연자원 등의 거래를 통해 외화를 벌어온 노동당 39호실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정일이 금장 권총과 승용차 등으로 선물공세를 편 것과 달리 김정은은 더욱 현실화된 달러로 군부 엘리트들의 충성심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서는 조선무역은행에서 발행하는 ‘나래’ 카드와 고려은행에서 발급하는 ‘고려’ 전자결제 카드가 사용되고 있다.

전자결제 카드는 북한의 대외결제은행 외환교환소에 달러나 유로화를 입금하면 당일의 환율에 따라 북한 돈으로 환전된 돈이 카드에 입력된다. 카드를 발급받을 때 사용자만이 알 수 있는 비밀번호 4자리를 입력하고, 비밀번호를 세 번 연속 틀리면 카드 결제가 자동으로 중지된다. 카드를 파손하거나 분실하면 신분 확인 후 재발급하는 등 국제사회의 카드 사용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카드는 외국인을 비롯해 일부 북한 관리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고려호텔, 평양 양각도호텔, 평양호텔, 대동강 식당 등과 합영회사, 외국인 숙소, 고기판매소, 보석상, 자동차 정비소, 휴대전화 봉사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김정은 시대 특권층은 여전히 군부 엘리트들이지만, 그들의 특혜도 간단한 선물이 아닌 외화카드 사용으로 북한 일반주민의 부러움을 사게 만들고 있다. 북한에서 외화는 권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이 외화(노동당 자금)를 장악하고 ‘선물정치’로 당과 군부를 움직여 왔는데 이제 김정은은 그 현금과 충성심을 직접 거래하는 더욱 ‘진보’한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이는 북한 경제가 서서히 화폐경제 중심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외화의 원천 자체가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현재의 외화카드 결제방식이 얼마나 더 갈지 무척 궁금하다. 국제사회의 금융제재가 강해질수록 김정은의 ‘외화선심’은 오래가기 어려울 것 같다. 우리 남한에 장성이 400여 명인데 반해 북한군의 장령 수는 600여 명이 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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