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년째 잃어버린 딸을 찾고 있는 송길용(61) 씨가 지난달 22일 오후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도로변에 걸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매년 국내 실종자가 늘고 있다. 지난 한 해에만 무려 9만 명이 넘었다. 새로 생기는 실종자뿐 아니라 누적된 장기실종사건만 해도 30만 건이다. 어렸을 적 부모님의 손을 놓쳤던 아기가 중년, 노인이 될 때까지 가족을 못 찾는 경우다. 오는 3월, 새 학기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이를 눈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실종아동의 가족들은 아이를 잃어버린 혹은 납치당한 죄 아닌 죄로 평생을 고통스럽게 보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매년 실종자가 증가하고 있는 원인과 대책은 무엇일까.

“아이를 찾습니다”
매일 유동인구 많은 휴게소 방문
전단지 돌릴 수 있다는 것이 희망

매주 찾는 아내의 묘
“오늘도 나 혼자 왔어… 미안해”
“혜희 찾아서 다음엔 같이 올게”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따르릉~따르릉’ “송혜희 아버님이신가요? 혜희가 남해에 있습니다, 빨리 와주세요.”

지난달 9일 이른 아침에 걸려온 한 통의 제보전화. 송길용(61, 남) 씨는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경찰과 함께 한걸음에 남해로 달려갔다. 하지만 비슷한 외모의 아이일 뿐, 그곳엔 혜희가 없었다.

실종된 딸을 찾아 전국을 다닌 지 올해로 14년째. 긴 세월만큼 송 씨의 얼굴은 주름살이 깊게 졌고 몸도 쇠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에 살아서 아빠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딸아이를 생각하니 한순간이라도 쉴 틈이 없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부터 전단지를 돌리고, 현수막을 걸러 다녀요. 한 사람이라도 우리 혜희를 알고 연락 주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지난달 18일 오전 8시 경기도 평택시 모곡동에 있는 자택에서 만난 송 씨. 이야기를 나눈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의 얼굴은 눈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왜 누가 잘못해서 아이가 실종됐는지 따질 기력도 없어 보였다. 송 씨는 오직 혜희만을 찾길 바랐다.

지난해 시에서 마련해 준 8평 남짓의 이곳 자택의 한쪽 벽면에는 ‘혜희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전단지와 ‘그리운 나의 딸 혜희에게’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가 걸려있었다. 바닥에는 낡은 전단지와 현수막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새 전단지의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현재 현수막 5장, 전단지 6000장이 남아있어요. 한 달도 사용할 수 없는 양이에요. 한번 제작하면 현수막 50개, 전단지 2만 장 정도해야 하는데, 230만 원이 들어요. 하지만 돈이 바닥난 지 오래라, 허리가 휠 정도예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숨을 푹푹 내쉬는 송 씨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해져갔다.

한쪽 바닥에는 허리 디스크와 협착증 약봉지가 한 움큼 놓여 있었다. 지난해 겨울, 혜희를 찾아다니다 다쳐 먹게 된 약이다.

“통증이 너무 심해 잠을 자주 설쳐요. 너무 고통스러워 하루에 8봉지를 먹은 적도 있어요. 수술할 돈도 없지만, 그럴 돈이 있으면 전단지와 현수막을 제작하는데 쓸 겁니다.”

‘덜컹 덜컹.’ 동행 취재를 위해 기자가 탑승한 17년 된 3인승 포터(화물차량)의 앞 유리창 아래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혜희의 사진이 10여 장 붙여 있었다. ‘아빠’ 하고 부르며 금방이라도 달려와 안길 듯했다.

혜희의 얼굴을 바라보던 송 씨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이내 고개를 창문 쪽으로 휙 돌렸다. ‘혜희야, 넌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 네가 정말 보고 싶구나.’

▲  ⓒ천지일보(뉴스천지)

◆매일 전단지 돌리며 아이 찾아
1999년 2월 13일. 막차가 끊기는 시각(오후 10시)이 지났음에도 송혜희(당시 송탄여고 3학년) 양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술에 취한 낯선 남성과 버스(도일동 행)에서 내려 마을 입구로 들어갔다는 버스기사의 제보. 온 가족이 새벽 내내 마을 곳곳을 뒤져봤지만, 혜희도 술에 취한 남성도 보이지 않았다.

경찰의 도움은 받지 못했다. 실종 당일 단순 가출이라고 생각한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3일이 지나도록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가족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관련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실종아동법’도 당시엔 없었다.

14년 전 사고 당일을 회상하던 송 씨는 너무나 괴로워했다. 마음의 지옥이 따로 없었다. “누군가에게 잡혀 감금됐을 수도….” 송 씨는 치솟는 울분을 누르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는 “돈을 원하면 내 심장이라도 팔아서 줄 거다.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주겠다. 혜희를 단 한번만 볼 수 있다면….” 그는 주먹으로 세차게 가슴을 두들기며 분통해 했다.

다음 날인 19일 오전 11시. 송 씨는 유동인구가 많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휴게소에 갔다. 평소 그가 자주 와 전단지를 돌리는 곳이다. “아이를 찾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전단지를 건네는 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전단지를 나눠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면, 혜희가 나타나도 그 아일 볼 면목이 없습니다.”

송 씨가 나눠주는 전단지를 받은 김한석(40, 남,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씨는 전단지 안에 적힌 글을 읽고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김 씨는 “꼭 (혜희를) 찾길 바란다. 나도 자식을 잃어버리면 전국으로 아이를 찾아다닐 거 같다”며 “지금은 ‘제보’가 최선이겠지만, 용기를 잃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 지난달 22일 송길용 씨가 집 근처에 있는 송탄공설묘지를 방문하고 있다. 송 씨는 아내가 잠들어 있는 이곳에 매주찾아와 아내에게 “다음에는 꼭 혜희와 함께 올게”라고 말을 전한다고 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여보 미안해… 다음에는 꼭 혜희와 함께 올게”
22일 오전 9시 송 씨의 집에서 차를 타고 10여 분 거리에 있는 송탄공설묘지. 이곳에는 그의 아내가 잠들어있다. 혜희를 잃어버린 후 부부는 딸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 다녔다.

부부는 정신적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술에 의지했다. 하지만 2년 후 아내는 심장병, 관절염을 앓았고, 알코올 중독증에도 빠졌다. 거기다 더해 우울증이 왔고, 3년째 되던 그해 송 씨의 아내는 혜희의 얼굴이 담긴 전단지를 가슴에 품고 송 씨의 곁을 떠났다.

아내가 안치된 이곳을 송 씨는 매주 한 번씩 오고 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여보, 오늘도 나 혼자 왔어. 하지만 (내가) 죽는 날까지 (혜희를) 찾아서 꼭 데리고 올게. 당신도 찾는데 좀 도와줘. 내 몸도 성치 않아서 이젠 너무 힘들고 벅차. 갈수록 두려움만 생겨. 하지만 당신하고 약속했으니 하늘나라에서 지켜봐 줘.”

공설묘지에서 내려와 다시 차에 탄 송 씨는 한참동안 혜희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혜희야, 꼭 살아만 있어다오. 아빠가 네게 가장 많이 미안하구나, 사랑한다 얘야.”

▲  송혜희 씨의 현재 추정 모습(왼쪽)과 실종 당시 모습ⓒ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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