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은 꽤 복잡한 곳이다. 전통 보존 지역이어서 현대적 도시 디자인이나 계획과는 거리가 멀다. 골목은 좁고 꼬불꼬불하며 무질서하다. 구급차나 소방차 한 대 편하게 들어갈 만한 곳이 드문 곳이다. 그 복잡함 때문에 전통의 거리라고는 하지만 정작 전통의 맛에 얼른 젖어 들기는 쉽지 않은 곳이 인사동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인사동이 갖는 이름값 때문에 그것에 끌려 나름대로 전통에 대한 심미(審美)나 탐구의 마음을 갖고 이곳을 찾는다. 그럴 때 기대가 컸다면 대개는 실망도 크게 안고 인사동을 뒤돌아선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외국 관광객을 포함한 국내외 인파가 매일 수만 내지 10만여 명이다. 전통의 냄새는 몰라도 적어도 사람 냄새만은 실컷 맡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얄팍한 상혼이 이들을 짜증내게 하지 않고 잘만 하면 가장 집약적이고 효과적으로 ‘우리의 것’을 알리고 서울과 한국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의 장소가 인사동인 것이다.

어떻든 그 인사동 한 귀퉁이 ‘먹자골목’에서 불이 났다. 지난 17일 밤 8시 20분경, 초저녁이었다. 허름한 한 건물 3층에서 ‘펑’ 소리와 함께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다닥다닥 붙은 이웃 건물을 삼켜가며 무서운 기세로 번져나갔다. 맹렬한 화마는 금방이라도 인사동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놓을 것만 같았다. 그곳은 소방차의 진입이 쉽지 않은 좁은 골목인데다 집집마다 가게마다 인화성 발화성 물질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그런 곳이었기에 그 불을 보면서 옛날 로마의 미치광이 황제 네로가 질러, 불바다가 된 로마나, 폭격으로 불타는 어느 도시에 관한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되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저걸 어쩌나. 인사동이 저렇게 불타다니-’. 남대문이 불 탈 때의 심경과 같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사동에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남은 우리 전통의 체취가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고 하는 안타까움은 피할 수 없었다.

불길은 소방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찬 물줄기에도 쉽게 잡히지 않았다. ‘펑’ ‘펑’ ‘펑’ LPG통이 터질 때마다 건물이 무너지고 불기둥이 치솟았다. 뿐만 아니라 폭탄이 터져 일으키는 것과 똑같은 화염이 둥글게 부풀어 올라 이웃 건물로 옮겨 붙으며 사방을 대낮처럼 밝혔다. 그 불길 속에 땅 속에 묻히지 않고 공중에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매달려 흔들리는 전깃줄들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 아슬아슬해보였다. 화재 현장의 폭발력에 튕겨져 나간 잔해들은, 그 중심으로부터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까지 비산(飛散)되었다. 폭발음은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까지 들렸다. 불길은 이렇게 1시간 40여 분 동안이나 광란의 춤을 추다 소방관들의 사투로 겨우 진화될 수 있었다.

그 피해는 막심했다. 인사동 화재가 말해주듯이 건물 밀집 지역 도심의 화재는 자칫 전쟁의 참화에 비견될 만큼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재난이 그렇듯이 그것 역시 미리 막는 것이 최선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사동 화재와 같은 재난을 되풀이해 겪는다. 그것은 불조심을 안 하거나 방제 시스템이나 방제기술이 효율적인 것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재난의 원인이 뻔히 드러나 있는데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서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인사동 화재의 경우 그 원인은 관계기관이 철저히 조사해 밝혀낼 일이로되 화재가 커지고 소화가 어려웠던 것은 펑펑 터지는 LPG 고압가스통 때문이었다. 예컨대 잘 쓰면 고마운 물건이며 어떤 외부요인 없이 자연발화로는 터질 리 없는 LPG를 애꿎게 몰아세우는 것 같지만 말하자면 그 LPG는 안전성이 충분히 잘 관리 감독되고 있는가 하고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 같은 위험한 LPG 고압가스통이 수백만 개나 서울 지역에 보급되어 서민 점포나 가계의 연료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가스가 새어나오도록 낡거나, 검사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불시에 어떤 계기로 터져 자칫 재난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위험한 물건이라 한들 대안도 없이 이미 널리 보급되어 쓰이고 있는 것을 단박에 못쓰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 안전성과 관리 감독만은 당국이 철저히 해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것이 바로 민생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재난과 사고의 근본 원인은 우리의 부실한 의식, 안전 불감증에 있다. 수없이 재난을 되풀이 겪어오면서도 정작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온 그 원인이라는 것도 기실은 바로 우리의 안전 불감증이다. 따라서 우리가 겪는 재난을 화재로 좁혀볼 때 고의적인 방화가 아니라면 누전에 의한 발화나 LPG통의 폭발에 의한 화재의 대형화나 확산은 재난의 부차적인 원인일 뿐이다. 그 근본 원인은 다시 말하거니와 다름 아닌 우리의 안전 불감증, 바로 그것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재난으로부터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한시의 방심도 없이 나라를 지키듯이 그렇게 사회의 안전도 빈틈없이 민관이 함께 지켜야 한다. 관계 기관은 화재의 원인의 진단과 점검, 감독을 통해 화재의 원인제거를 해나가야 하며 전기 가스의 단말 기구를 다루는 실수요자들은 조심 또 조심 항시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이것 말고는 다른 왕도는 없다.

인사동 화재는 정말 아찔했다. 재난에 대한 사전 경각심을 실천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사고가 없도록 해야 한다. 천려일실(千慮一失), 만약의 경우 사전 예방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소방 도로를 확보하고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의 마련도 완벽해야 한다. 국가안보나 사회 안전이나 유비무환이다. 유비무환의 실천으로 재난 없는 나라가 국민이 행복한 나라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