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지난번에는 고소영이라더니 이번에는 성시경이란다. 새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 갈 내각의 핵심 멤버들에 대한 출신 성분을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인데, 성균관대, 고시, 경기고 출신들이 많다는 뜻이라고 한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는 이 세 가지 중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다.

김 내정자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그가 ‘성시경’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입지전적인 성공 스토리 때문이다. 그는 서울 정릉 산동네에서 살다가 14세 때 미국 메릴랜드의 빈민가에서 고단한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하루 2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밤에는 신문 배달이나 식당 주방 허드렛일을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고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일터로 향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계적 통신회사인 알카텔-루슨트의 최고전략책임자와 벨연구소의 사장이 되고 미국의 400대 부호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엄청난 부자지만 딸과 함께 3등석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편안함이 아니라 역경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란다.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 최선을 다해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낫게 살자”며 자신을 다독였다고 한다.

확실히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그가 오늘날 이만큼의 성취를 이룬 것은 환경탓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 온 덕분이다. 미국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며 못마땅해 하는 목소리도 있다지만 그가 이룬 성취 그 자체에 대한 가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말 세상을 떠난 황수관 박사도 우리들에게 웃음보다 귀한 교훈을 남겼다. 그 역시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학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새벽별을 보며 집을 나서 학교까지 꼬박 3시간을 걸어야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가 되었다. 그는 더 큰 꿈을 안고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지만 의학에 관심이 생겨 의대에 청강생으로 들어갔다. 꼬박 10년 동안 청강하면서 수모를 겪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의대 졸업장도 없이 연세대 의대 교수가 되었다.

그는 숨지기 전 병원에서 특급 대우를 해주려 했지만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순서를 기다렸을 정도로 소탈했다고 한다. 그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여러분 웃으세요.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즐거우세요!”라고 한 것은 그 자신이 웃음으로 고난을 이겨 낸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던 것이다.
일본 속담에 ‘돌 위에 3년’이란 말이 있다. 차가운 돌도 3년을 앉아 있으면 따뜻해진다는 말인데, 참고 견디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의 의미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이가 일본 통일의 영웅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성질 급한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린다”했고, 꾀 많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새는 울도록 만든다” 했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그는 기다릴 줄 알았고 모욕을 견딜 줄도 알았다.

그는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은 것이다. 서두르지 마라”고 했다. ‘빛의 속도’로 살고 있는 이 시대 청춘들에게는 곰팡내 나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살아보면 그게 다 맞는 소리다, 싶어진다.

김삿갓이 “백 년도 못 살 인간들이 천 년의 고민을 안고 산다”며 부질없는 인간사를 조롱했지만, 이제는 백 년도 더 사는 세상이다. 그러니, 진짜 인생 길게 보고 살아야 한다.

하루 2시간 자고, 새벽별 보고 3시간 걸어 학교 간다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거북이처럼 열심히 나아가다 보면, 장관도 되고 박사도 되고, 그렇게 된다. 다 제 할 탓이다. 남 탓하기 절대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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