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읽고 또 믿고 있는 경서가 있다면 성경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그 성경을 이해하고 있을까. 그래서인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라는 말씀이 있는가 보다.

그 오해의 대표적 예가 바로 ‘아담’이니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격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아담을 인류의 조상이라고 믿는 데서부터 신앙은 종교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곁길로 흐르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담은 결코 인류의 조상이 아니며 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아담에 대해 정의하기를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福)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 5:1~2)”라고 말씀하셨으니, 아담은 인류 문명학적 인간의 조상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일컫는 최초의 사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했으니 하나님의 형상은 도대체 어떠한 형상인가를 알아야만 오해 아닌 이해하는 자가 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라 하셨고, 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고 하셨으니, 생명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을 창조한 생기(生氣)며, 이 생기로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슥 12:1)”라는 말씀에서와 같이, 사람 안에 심령을 창조하는 것이고, 그렇게 창조된 사람에게는 당연히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이 보이게 되니 이것이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이치다.

아버지가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에게서 아버지의 형상이 보이듯이, 하나님이 말씀이라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반드시 그 안에 말씀이 있게 되니, 그 말씀이란 매개체로 인해 서로 대화가 가능해지고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서로 말을 할 때 말이 통하지 않으면 ‘네가 사람이냐’고 하듯이, 하나님도 하나님과의 대화가 가능한 사람을 일컬어 사람이라 했으니, 바로 그가 ‘하나님이 일컫는 최초의 사람 아담’이라는 것이다.

유치하지만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는 또 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날 때,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4)”는 고백을 통해서 당시 지면에는 아담 내지 아담 가족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성경은 암시하고 있음을 깨달아야만 무지(無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창 2:7)”. 그렇다. 생명의 말씀이 없이 마치 흙과 다름없는 인생에 불과했던 한 육체를 택해 이처럼 생명의 말씀 즉, 생기를 주어 하나님이 인정하는 또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한 목자(牧者)로 세웠으니 바로 아담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한 최초의 사람이자 목자인 아담의 범죄로 이 땅엔 죄가 들어왔고, 하나님은 죄를 없애기 위해 시대마다 새 목자를 세워 회복의 역사를 펼쳐왔으니 육천 년 한 맺힌 성경의 역사요 선민사(選民史)다. 결단코 인류의 역사가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히는 바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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