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ㆍ시인

 
흘러간 물이 그 자리에 되돌아올 수 없는데 이미 과거가 돼버린 현상이나 인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설령 그 사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을 삼아 교훈을 일깨운다 하더라도 궁색해 보이고, 비겁하다는 감마저 든다. 그런 전제를 강조하는 까닭은 일주일 후면 이명박 정부가 물러나고, 본란의 다음 회차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는 첫날이기에, 여기에서 이명박 정부의 공과에 대해 언급하여 시시비비의 화두(話頭)를 전하려 함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17대 대선 당시 정동영 여당 후보를 531만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은 10년 만에 잃어버린 정권을 탈환했다. 대선치고는 승패가 싱겁게 끝났는데, 그만큼 유권자들이 경제계 출신의 후보가 내세운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에 솔깃했다는 증거다. 경제가 풍비박산이 되어 살얼음 낀 시기에 국민 중 다수가 “경제회복하려면 아무래도 경제인 출신이 낫겠지” 생각하고, 전폭 지지함으로써 야당 후보가 여당 후보를 큰 표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경상도 동해안의 어느 산간오지(奧地) 군은 이 대통령 지지율이 그의 고향인 포항시 북구 선거구의 84.3%를 넘은 84.8%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그리하여 낙후지역 주민들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산촌이 창상지변(滄桑之變)이라도 되어 큰 발전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한 수 더 나아가 그곳 정치인은 이미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던 동서4축고속도로 건설사업 중 미개통구간인 상주~영덕 구간을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완전히 끝낼 거라 호언장담하면서 주민들을 선동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국가예산을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니 대선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하여 특별지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지역 주민들은 한동안 들떠있었고, 지역 정치권은 최대로 이용했다. 대다수 국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 호남이 크게 발전한 것으로 알고 대표적 예로 서해안고속도로 건설을 꼽는다. 그러나 실상은 고속도로건설계획을 입안한 것은 서해안시대를 예견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이었고, 본격적인 도로예산을 지원한 시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이었다. 그 후 국민의 정부에서 완공되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마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해안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처럼 알고 있다.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기간 중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하여 복원한 청계천에 대해 시민들은 높이 평가했고, 또한 경영인으로서 경제회복에 적격자라 하여 5년 전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고 당차게 출발한 게 아닌가. 그러나 집권초기부터 ‘고소영 내각’이라는 등 인사에서 말썽을 일으키더니, 한미FTA과 관련하여 명박산성을 쌓아 원성을 들었고, 최대 업적으로 치부하는 4대강사업이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허술함이 나타났다. 게다가 지역연고가 있는 ‘영포회’ 멤버로 구성된 국무총리실 공무원이 민간인 불법사찰한 건과 관련하여 최근에 인권위로부터 대통령이 경고를 받는 등 불미스런 사건으로 스타일을 구겼다.

“국민을 주인처럼 섬기겠다”느니 “경제를 살리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국민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기대치가 높았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이 대통령도 아침 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를 얻는다는 ‘얼리 버드(early bird)’를 일깨우며, 새벽부터 집무하는 등 열정으로 세간에 풍성한 화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혁신을 위해 행정구역 개편을 주장했다. 지금의 행정구역은 조선조에 만든 도제(道制)를 근간으로 하여 일제시기에 마련된 것이고 지금도 중앙-시도-시군구-읍면동의 4단계로 이루어지는 복합구조로 당연히 정보화시대에 맞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도를 없애고, 전국 70개 내외의 광역시도로 개편하여 계층구조 단계를 축소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용머리를 그리려다 뱀 꼬리를 그리고만 상태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듯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 경영인 출신으로서 최고의 건설전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현장을 다니면서 그가 하는 말은 ‘내가 경제를 좀 아는데…’였으며, 이에 고무된 건설사들은 경기활성에 적격자라 하여 환호했지만 백년하청(百年河淸)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주택경기 등 건설 활성화가 하마나 될까 기대했던 건설사들의 현재 사정은 어떠한가?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강물마냥 기를 펴지 못한 채로 부도가 나고, 파산돼서 건설경기 자체를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참담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제 일주일 후면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바통을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고서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공과(功過)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점은 사상 처음으로 작년 나라살림이 첫 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이고, 그 빚을 박근혜 정부에 넘겨준다는 사실이다. 2012년도 국가재정 지출 중 일반회계에서는 8533억 원이 남았지만, 농특세 세수부진으로 인해 특별회계에서 1조 17억 원의 적자가 나서 1484억 원의 빚이 발생했다. ‘마이너스’ 상태가 된 국가재정. 이것이 이명박 정부 5년간의 국가살림살이의 성적표다. 극소수 수혜자들만이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호강하는 동안 국민은 춥고 배고픈 설움을 겪었으니 그동안 속빈 강정의 세월이 무던히도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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