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육군 32사단 태안소초 장병들이 쌍열포 사격준비를 마치고 해안으로 접근하는 적들을 경계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1953년 7월 27일 휴전
총성 멎은 지 60주년
“일시적 평화 기억해야”

북한 핵실험 강행으로
남북관계 긴장 고조
“올바른 국가관 필요”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1953년 7월 27일. 이날은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6.25전쟁이 정전을 맞이한 날이다. 또한 올해는 대한민국에서 총성이 멎은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대다수 사람들은 전쟁 발발일은 기억하면서도 정전협정이 언제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본지는 정전 60주년을 맞아 정전협정이 이뤄진 배경과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이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우리 군과 유엔군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당시 인명 피해 상황을 보면 전사 17만 8천여 명, 부상 55만 5천여 명, 실종 2만 8천여 명, 포로 1만 4천여 명, 민간피해자 99만 1천여 명이나 된다. 또한 80%에 달하는 산업시설과 공공시설이 파괴되는 등 대한민국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

거듭된 전투로 인해 양측의 인적‧물적 손실이 급격히 늘어나자 정전협정이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엔군은 몇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격퇴했으나 완승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공산군도 그동안 전투에서의 손실로 더 이상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당시 유엔군이 북진했더라면 통일도 가능했다. 하지만 북진할 경우 유엔군은 중공군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했다. 유엔군과 공산군은 각자가 패전하지 않은 상태인 휴전으로 전쟁을 결론지으려고 한 것이다. 이에 미국은 1951년 3월부터 휴전을 구상, 5월 공식적으로 휴전을 제의했다.

1951년 6월 16일 그리고 리(Trigve Lie) 유엔사무총장도 한국전의 휴전을 정식 제의했고, 소련이 그해 6월 27일 휴전 관련 성명을 발표하면서 정전협상은 본격화됐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과의 회담에 깊은 의구심을 보였고 정전회담을 강력히 반대했다. 정전을 반대하는 국민운동이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나기도 했다.

6.25참전유공자회 용산구지회 이종훈(80) 사무국장은 “당시 치열한 전투 속에 휴전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오갔다. 하지만 후방에선 학생들이 정전을 반대하며 북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면서 “군인들은 직접 전투하는 입장이니 힘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1951년 7월 8일 개성 북쪽에 위치한 ‘래봉장’에서 대령급을 대표로 하는 예비회담이 개최됐다. 이것은 정전협정을 위한 첫 번째 접촉이었다. 예비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7월 10일 첫 휴전회담이 개최, 26회까지 개성에서 회담을 갖고, 7월 20일부터 판문점으로 회담장소를 이동, 휴전을 위한 회담이 계속됐다.

양측의 회담은 지루하게 이어졌고, 장기화됐다. 2년이 넘게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마다 회담을 중지하고 전투를 재개하는 일을 반복했다. 양측은 회담 의제 채택,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설정, 전쟁포로 교환 문제 등 많은 안건을 놓고 상당 시간 협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비방, 설전, 논의, 결렬, 재개 등의 과정이 반복됐다. 결국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대표로 나온 윌리엄 해리슨 미육군중장과 북한군과 중공군을 대표한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이 국어, 영어, 중국어로 된 휴전협정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만 3년 1개월 동안 지속했던 전쟁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하지만 정전협정은 영구적인 평화가 아닌 일시적인 적대행위를 중단하자는 약속에 불과하다. 정전협정이 발효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남북은 155마일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둔 채 여전히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6.25참전유공자회 용산구지회 전용식(85) 지회장은 “60년이 지났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다. 북한과 여전히 적대적으로 있다”며 “북한에선 핵을 만들어서 쏘네 마네 한다. 이럴 때일수록 올바른 국가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동부전선 최전방에서 포병으로 근무한 전 지회장은 당시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총성이 멎자 머릿속에 떠오른 단 한마디는 “이제 살았다”였다고 한다. 그는 “실제 전쟁을 안 겪은 사람은 실감 못한다. 전쟁은 없어야 한다”면서 “강력한 안보 위에 전쟁이 없는 평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전 60주년을 맞이한 현재의 대한민국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의 상흔을 딛고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거듭났다. 하지만 아직 전쟁 종식이 아닌 정전기간인 만큼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안보의식을 강화해 대한민국이 세계평화 구현에 앞장서길 기대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